
작년 2024년 8월, 정년퇴직을 앞두고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니 제대로 편히 쉬어본 적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꿈을 향해
도전하고 환자를 치유하는 의사로서의 삶이 계속되면서, 임상 현장의 일이 반복되며 그로 인해 여유를 낼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지의 영역에 대한 도전은 계속해서 이어졌습니다.
의사의 길과 목표를 향한 끊임없는 도전
제 인생의 첫 번째 꿈은 의사가 되고 의과대학의 교수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 항상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하고, 자
신의 생활 습관이나 태도 등을 엄격하게 다루면서 단계별 목표를 세우고 노력했습니다. 의대를 다닐 때는 공부를 하기 위해서 일찍
기상하여 통행금지가 해제되는 새벽 4시에 학교로 갔습니다. 이 목표의식은 계속되어 전공의 시절과 공중보건의 시절에도 이어졌
고, 공중보건의 시절에는 새벽에 영어 공부하러 영어학원도 계속 다녔습니다. 조금 막연함도 있었지만 의과대학 6년, 인턴 1년, 레
지던트 3년, 공중보건의 3년 동안 목표 달성을 위해 매진했습니다. 두 번째 꿈은 대학교수가 된 이후 생겼습니다. 국내 최고를 넘어 세
계적인 반열에 오르는 의학자가 되자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30년 전과 똑같이 5시 기상하고 휴일도 일을 하면서 ‘진인사대천명
(盡人事待天命)’을 되새기며 소명의식과 열정을 가지고 병원에 출근하고 있습니다. 물론 1992~1994년 전임의와 전임강사 시절 너
무 힘들어 대학교수의 길이 맞는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그만두려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 어려운 고비를 넘기며 길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부지런함과 성실함은 기본이고, 도덕적인 부분을지키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학문에 힘썼습니다.
세 번째 목표는 교수로서 후배들에게 학문과 임상 경험을 어떻게 이양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었습니다. 제가 떠난 자리가 아름답
기 위해서는 후배들이 더 빼어나고 발전을 해야만 합니다. 제가 대학교를 떠날 때, 전반적인 진료·연구 분야를 잘 정리해서 발전적
으로 젊은 교수들에게 이관하여 그들이 성공하도록 만드는 것이 제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마지막 과업이라 생각합니다. 후배들이
청출어람(靑出於藍) 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후배와 사회에 대한 새로운 소임
정년퇴직 후 어떤 길을 선택할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선배님들께서는 100세 시대에 20년 이상 역할을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라고 하셨고, 자신을 위한 삶을 살라고 조언해 주셨습니다. 그동안 공직, 기업, 개원, 다른 대학이나 병원으로의 이전을 고민했으나, 저는 한양대학교에 남아 진료와 연구의 봉사를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여러분들의 도움 덕분에 저는 현재 한양대학교1호 의학석좌교수이자 진료석좌교수로 활동하며, 한양대학교 류마티즘연구원 원장과 생명과학기술원 원장으로서 융합연구를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2018년 6월, 아내와 함께 한라산 정상에 올랐던 일이 떠오릅니다. 어렵게 올라갔지만 정상에 머물 틈도 없이 곧바로 하산해야 했고, 내려오는 길이 더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는 정년 이후의 삶과도 같습니다. 지금까지 열심히 올라왔지만, 내려가는 과정에서 더욱 신중하고 의미 있는 선택이 필요하다는것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음악에는 문외한인 제가 2023년 연말에 우연히 2022년 반 클라이번(Van Cliburn) 콩쿠르 60년 역사상 18세의 나이로 최연소 우승을 한 한국인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도전과 우승 과정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 ‘크레센도(Crescendo, 점점 세게)’를 아내와 함께 관람했습니다. 미국 음악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인 반 클라이번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이 콩쿠르는 1962년부터 4년마다 미국 텍사스주에서 개최되는 국제 피아노 경연대회로, 젊은 피아니스트에게는 꿈의 무대라고 합니다. ‘임윤찬’의 소명의식에 따른 피나는 준비와 노력, 역경과 희생을 바탕으로 한 예술성, 테크닉, 기교등 탁월한 실력은 다시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저에게 다가온 다른 감흥은 오케스트라 지휘자 메린 올솝(Marin Alsop)과 50년 나이 차이를 넘어선 임윤찬과의 조화와 교감의 형성입니다. 결승에서 “떨린다”라는 임윤찬에게 “내일이면 끝나니 즐겨, 내가 곁에 있잖아”라며 그의 작은 등을 어루만지는 그녀. ‘미치지 않고서야 칠 수 없다’는 라흐마니노프 3번을 임윤찬이 완벽하게 소화해 내자, 지휘대에서 눈물을 훔치며 내려와 안아주던 60대의 여성지휘자(1956년생). ‘금녀의 영역’이던 오케스트라 지휘대에 오르기 위해 수많은 도전과 좌절을 거듭하면서도 “나에게 ‘못한다’는 단어는 있을 수 없다”고 단언했다는 그녀는 마침내 전설의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을 감동시키며 ‘유리 포디엄(Podium, 지휘자가 서는단)’을 뚫고 지휘대에 올라선 이 시대의 거장입니다. 어쩌면 임윤찬의 불꽃 같은 연주는 어머니처럼 푸근하게 받쳐주고 이끌어주던 메린 올솝과 오케스트라가 있어 가능하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이것은 감히 비교할 수는 없지만, 제가 정년퇴임 후에 그리는 후배와 저의 이상적인 모습이기도 합니다. 제가 자세를 낮추고 후배가 연주하는 대로 따라가면서 함께 조화를 이룰 수 있다면, 후배의 의술 또한 빛날 것이라 생각합니다.
가지 않은 길을 걸어갑니다
마지막으로 정리해 보면, 정년퇴직 후 저의 역할은 지속적으로, 다양한 방법으로 더 많은 고민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제 시작인 것 같습니다. 그동안 저와 함께 해 온 환우들, 병원, 대학교, 사회, 국가로부터 혜택을 받으며 살아온 제가 앞으로는 현재의 삶을 넘어서 다양한 방법으로 환우들, 사회와 국가에 도움이 되는 삶, 진짜 보람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다시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가장 좋아하는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의 “가지 않은길(The Road Not Taken)” 시처럼, 1993년 한양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첫 교수 생활을 시작한 이후 줄곧 ‘가지 않은 길’의 여정을 밟아왔습니다. 이는 미국 유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의사로서, 한 인간으로서 여러 갈림길에 설 때마다 안주보다는 도전을, 안일보다는 소명을, 이기적 안위보다는 환자 회생을 위한 희생을 스스럼없이 선택할수 있도록 이끌어준 제 인생 좌표이기도 합니다. 이제 정년 이후 또다른 ‘가지 않은 길’을 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건강한 신체에서 건강한 생각과 사고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저 자신을 잘 단련하여 건강하게 지내며 새롭고 성공적인 인생 2막의 기회를 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동안 저와 함께 해 주신, 그리고 앞으로 함께 할 동료 교수님들, 교직원, 연구원, 그리고 환우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글. 배상철 교수
한양대학교류마티스병원 의학석좌교수/진료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