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대학교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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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학교의료원 의료진의 ‘喜怒哀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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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하지 않는다면, 희망은 언제나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노성원 교수

시작이 반. 중독 치료가 바로 그렇다. 그러나 중독을 질환으로 인식하는 사람은 전체 인구의 10% 정도다. 의지할 데 없이 마음의 병을 키우는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의료진이 전면에 나섰다. 그리고 그 중심에 노성원 교수가 있다.

글. 윤진아 사진. 김지원

안녕하세요 선생님, 정신건강의학과 노성원 교수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보내오는 신호

진료 중 환자의 폭력에 노출되기도 하고, 유단자 출신 중독 환자의 입원실 탈출을 막다가 같이 뒹굴어 옷이 다 찢어진 적도 있다. 다행히 치료를 잘 마치고 퇴원을 했지만, “나도 모르게 강원랜드로 차를 몰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곤 했다”는 환자의 고백은 노성원 교수에게 무거운 사명을 안겼다.

“중독은 뇌의 보상회로에 문제가 생겨 발병하게 됩니다.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에 의해 쾌락 중추가 자극되는데, 이 쾌락을 지속하고자 행동을 반복하는 게 바로 중독 행동이죠. 중독이 진행되면 충동을 억제하는 뇌기능이 마비되고 기능도 떨어집니다. 이런 변화는 장기간에 걸쳐 일어나기 때문에 정상으로 돌아오기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그래서 중독은 회복이 쉽지 않고 만성적으로 재발하게 되죠. 어릴 때 중독을 경험하면 전두엽의 발달이 지연되고 성인이 되어 충동적이고 반사회적인 성격을 가지게 됩니다.”

도박, 알코올, 담배, 마약, 게임 등에 중독되면 의지가 아니라 질병으로 접근해야 한다. 중독 질환을 제때 전문적으로 치료하기 위해 한양대학교병원은 2016년 정신건강의학과에 중독질환 분야를 신설하고, 중독치료전문가인 노성원 교수를 영입했다.

노성원 교수는 한양대학교 의과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후 미국 하버드의대 매사추세츠종합병원 중독의학센터 연구교수, 일본 국립 구리하마중독의료센터 연구의사, 국립서울병원 국립정신보건교육연구센터 정신보건연구과장을 역임했다. 그 과정에서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중앙정신의학논문상(2013), 미국임상정신약물학회 신진연구자상(2012), 환인정신의학상 젊은의학자상(2011) 등을 수상하며 국내 정신건강의학 발전에 매진해왔다.

“대학병원 중에서 중독질환 전문의가 있는 병원이 많지 않아요. 급성기 알코올 중독 환자의 경우 보통은 알코올전문병원이나 만성전문병원에서 장기 입원치료를 진행하는데, 한양대학교병원에서는 빠른 개입과 약물, 상담 치료를 통해 통원 치료만으로 환자의 사회 복귀를 돕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노성원 교수 환자 진료

중독 치료 시작은 ‘뇌질환 인정하기’

어떤 질환이든 적절한 의료서비스가 ‘제때’ 이뤄져야 한다. 중독 질환은 더더욱 그렇다. 노성원 교수는 “환자 스스로 자신이 중독임을 인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며 “주변에서 중독을 바라보는 관점이 잘못돼 오랫동안 방치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말했다.

“중독 질환 환자가 100명에 달한다면, 그 가운데 15명만 치료를 받습니다. 나머지 85명은 중독을 병으로 생각하지 않다가, 모든 걸 잃고서야 병원을 방문하거나 삶을 포기하죠. 의지가 약해서, 성격에 문제가 있어서, 도덕성이 타락해서 중독됐다고 생각하고 뒤늦게 치료를 받는 사례가 참 많아요. 의사와 상담만 받아도 치료율이 10%로 올라가고, 인지행동치료·약물치료까지 병행하면 효과는 25~35%까지 올라가요. 조기에 다양한 치료법을 병행한다면 그만큼 회복이 빠릅니다.”

한 사람, 한 가정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는 중차대한 일이기에 그는 어떻게 하면 더 많은 환자를 살리고 삶의 질을 끌어올릴 수 있을지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그가 가장 안타깝게 느끼는 순간은 재발이다. 어렵게 완치에 이른 알코올 중독 환자가 전해준 감사편지의 감동이 채 식기 전, 2주 만에 다시 만취해 병원을 찾은 모습을 보며 이루 말할 수 없는 좌절을 느끼기도 했다.

“중독은 만성 질환이면서 재발이 흔한 질병이에요. 하루하루가 전쟁이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재발했다고 해서 스스로에게 실망하면 안 됩니다. 왜 실수했는지 이유를 찾아보고 또 그러한 상황을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인다면 회복할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실수나 재발 또한 회복의 과정이고, 중독치료는 단거리 달리기가 아니라 마라톤이라고 말합니다. 때로는 넘어질 수 있고 멈출 수도 있지만, 포기하지 않고 다시 뛴다면 기회가 생기고 회복될 희망이 있습니다.”

 

중독 치료는 ‘마라톤’이다

한국인의 26.6% 이상이 일생에 한 번 이상 정신질환에 시달린다. 나날이 다양해지는 스트레스 앞에 한없이 나약한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정신과 분야는 단기 치료가 어렵고, 치료 결과를 좌우하는 요소도 많다. 노성원 교수가 숨 가쁘게 돌아가는 진료 일정을 마치고도 밤늦게까지 연구에 매달리는 이유다. 올해 새로 시작한 연구과제 <알코올 중독의 새로운 약물치료 개발> 임상시험도 곧 착수할 예정이다.

양평군 정신건강증진센터 및 자살예방센터장, 양평군 치매안심센터장, 한국중독정신의학회 이사로도 활동 중인 노성원 교수는 환자 개개인의 치료를 넘어 지역사회와 국가 치료 시스템 개선에도 소매를 걷어붙이고 있다. 성동구정신건강복지센터의 알코올 중독 예방·치료·관리 사업의 자문과 운영에도 함께 머리를 맞대왔다. 보다 많은 환자가 늦기 전에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치료시기를 놓치기 전에 제대로 진단하고 치료 방향을 제시해줄 의료진이 환자 ‘곁’에 있어야 한다는 말에 힘이 실렸다.

“누구나 살면서 정신 건강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어요. 혼자 고민하거나 해결하려 하지 말고 더 많은 것을 잃기 전에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중독치료전문가로서 제게는 환자의 건강을 되찾게 하는 임무가 있고, 좀 더 나아가 중독치료의 접근성을 높이고 사회적 편견을 해소해 좀 더 나은 치료 인프라를 구축하는 임무가 있다고 생각해요. 정신건강을 해치는 각종 위해 요인을 제거하고, 우리 이웃이 더욱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한양대학교병원 의료진이 적극 돕겠습니다.”

2019.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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