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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희망을잃지 않을거예요”, 이형중 교수
뇌출혈로 쓰러진 남편 곁을 지키는 박현숙 님의 편지 든든한 어깨로 가족을 지켜주던 가장의 부재는 더욱 크게 다가온다. 응급 수술 후 진료과를 넘나들며 겪은 고비만 수차례,그와 가족은 꽤나 힘든 시간을 함께 버텨냈다. 그리고 환자의 아내 박현숙 님은 모두의 아픔을 위로해준 이형중 한양대학교병원 신경외과 교수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정리. 황원희 / 사진. 박승주 믿고 의지하는 이형중 교수님께 아직도 그 날이 생생하네요. 작년 7월 25일날 급하게 한양대학교병원을 찾았어요. 남편이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고 나서였죠. 지병을 앓고 있지는 않던 터라 큰 병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병원에 도착해보니 상태가 좋지 않았어요. 뇌출혈이라니…… 정말 아무 생각도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죠. 그때 저희 가족이 유일하게 믿고 의지한 분이 바로 이형중 교수님이셨어요. 응급실에서도 하나부터 열까지 친절하게 설명해 주시고, 관심을 많이 가져주셨으니까요. 남편의 상태가 좋지 않아 외과에서 내과, 중환자실 그리고 다시 외과와 내과를 옮겨 다닐 때도 항상 상태를 확인해 주시고, 결국엔 제 환자로 맞아 끝까지 신경 써 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남편의 상태를 확인해 주시던 이형중 교수님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어요. 그런 관심이 환자에게는 정말 최고의 선물이잖아요. 감사하다는 말 밖에는 드릴 말씀이 없을 정도예요. 이건 나중에 안 사실인데 저희 딸 아이가 이형중 교수님께 먼저 연락을 했다고 해요. 얼마나 답답했으면 그랬을까 싶은데 교수님께서 이야기를 잘 들어주셔서 덕분에 마음의 안정을 찾은 것 같아요. 최근에는 남편과 딸의 이야기를 글로 옮겨서 기고문도 내셨다고 해요. 저도 글을 읽었는데 한 구절 한 구절이 제 마음에 와 닿더라고요. 처음엔 절망감이 컸지만 지금은 조금씩 마음을 다잡아가고 있어요. 꿋꿋하게 이겨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차츰차츰 건강한 모습으로 회복되어 가는 남편의 모습을 보고 싶거든요. 항상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교수님 감사함을 담아 박현숙 드림 박현숙 님에게 박현숙 님과 따님 현아 씨의 얼굴이 또렷이 기억에 남아있어요. 전폭적으로 믿어주시니 의사 입장에선 굉장히 고마운 일이었죠. 보통 외과 의사는 수술만 끝내면 그 역할이 끝나기 때문에 환자의 속사정이나 그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는 큰 연결 고리가 없어요. 그런데 환자분의 사정도 듣게 되고 관심을 갖게 되니까 인연이 이렇게 이어졌네요. 무조건적으로 저를 믿어준 박현숙 님과 현아 씨에게 저 역시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요. 환자와 보호자의 믿음이 의사에게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거든요. 지금처럼 희망을 잃지 않고 긍정적으로 삶을 이어나갔으면 좋겠어요. 고맙습니다. 이형중 드림 고마운 당신에게 |한양대학교의료원 앞으로 도착한 감사의 편지를 전해드립니다.
2015-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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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가 이끄는 삶, 그 분명한 행보 - 최동호 교수
한양대학교병원 외과 최동호 교수 “행복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하는 사람. “열정의 근원이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바로 “목표”라고 분명하게 대답하는 사람. 한양대학교병원 외과 최동호 교수의 이야기다. 평생의 꿈인 ‘인공 간’ 연구의 초석을 다져 꼭 결실을 맺고 싶다는 최동호 교수는 ‘내가 행복해야 모두가 행복하다’는 삶의 모토로 오늘도 새로운 길을 내는 데 여념이 없다. 글. 이지연 사진. 정준택 경계 없는 대화의 시간 누군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현실의 문 하나를 열고 들어가는 일이기도 하지만, 보이지 않는 마음의 문을 여는 일이기도 하다. 전자를 열 때야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똑똑’ 문을 두드린 후 들어서면 된다지만 후자의 경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처음 보는 낯선 대상을 앞에 두고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를 풀어낼 사람이 흔치 않기 때문이다. 최동호 교수의 교수실 문 앞에 섰을 때의 긴장감이 현실의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홀연히 사라져버린 것은 활짝 웃으며 진심으로 사람을 반갑게 맞이하는 그의 미소 덕분이었다. 예기치 못했던 반가운 맞이함은 시간을 두고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한다는 생각조차도 잊게 만들었다. “사우나 가는 걸 좋아해요. 담배는 원래 안 피웠고, 술은 조금 마셨는데 지난해 부정맥이 생겨서 끊었죠. 살도 좀 빼야 하는데 어디 따로 나가서 운동할 시간은 없고 그렇다고 운동을 안 하면 수술하고 집중해야 할 때 힘이 달리니까 아예 교수실에 자전거를 갖다 놨어요.” 최동호 교수는 낯선 이에 대한 한 치의 거리낌도 숨김도, 경계도 없이 술술 이야기를 풀어냈다. 4~5평 되는 작은 교수실 왼쪽에 실내용 사이클을 놓게 된 사연이며, 그 높이에 맞게 책상을 높여 때로는 서서 일을 한다는 이야기, 하루의 일과를 이곳에서 정리하고, 틈틈이 공부도 하며 강의 자료 등을 만들면서 수시로 자전거를 탄다는 그의 일상이 그림처럼 그려졌다. 외과 중에서도 간, 담도, 췌장 등을 수술하는 간담췌 분야 수술의이면서 간줄기세포에 대한 연구를 10년 넘게 해온 최동호 교수는 한양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미국국립암센터, 존스홉킨스병원에서 간담췌 분야 연수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타 병원에서 10년 동안 근무했다. 그리고 2013년 9월, 모교인 한양대학교병원으로 돌아왔다. 돌아와 몇 달 지나지 않은 지난 4월엔 ‘제11차 세계간담췌학회’에서 ‘무수혈췌십이지장절제술’을 적용한 사례를 담은 내용으로 ‘포스터 우수 구연상’을 수상했다. “모교로 다시 올 수 있어서 영광이었죠. 한편으로는 부담도 됐고요. 현재는 내년 초부터 한양대학교병원에서 진행할 간이식 수술에 대한 준비 책임을 맡고 있어요. 새로 시작하는 만큼 챙겨야 할 것들이 많지만, 이 역시 새로운 도전이고 제게 주어진 만큼 즐거운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사이클과 더불어 교수실 한구석에 세워둔 접이식 침대에서 일주일에 3~4번 쪽잠을 잔다는 최동호 교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걸 하고 싶은 자신의 욕망과 맞닿은 지금이 행복하게 하는 원동력이라 힘주어 말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키워온 꿈을 현실로 구체적으로 ‘간’이라는 장기에 관심을 가진 의과대학생 때부터 외과 의사가 된 지금까지 최동호 교수의 최종 목표는 ‘인공 간’을 만드는 것이다. “수술을 하다 보면 의사로서의 한계를 느낄 때가 있어요. 수술을 잘 마쳐도 환자의 상태에 따라 금세 재발된다거나, 의약품 개발이 미비해서 향후 치료방법이 확고하지 않는 등 의사가 아무리 노력해도 현실적으로 병을 치료하기 쉽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이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새로운 치료방법을 개발하는 것이 의사의 역할 같아요. 제 연구의 최종 목표는 간 이식을 받지 못하는 환자에게 줄기세포를 이용해 인공 간을 만들어 간 이식을 도와줄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죠. 제 나름대로는 현재 제가 목표한 지점의 중간과정에 도달했다고 생각해요.” 누군가 “모교로도 왔고, 교수도 됐으니 네가 하고 싶은 걸 다하지 않았느냐?”라고 물었을 때, 아직도 하고 싶은 것, 해야 할 일이 많다고 대답했다는 최동호 교수. 그가 자신의 건강을 챙기고, 자기 관리에 열심인 이유가 이 한마디로 설명됐다. 올해 40대 중반인 최동호 교수가 의사의 꿈을 처음 품게 된 것은 재미있게도 초등학교 과학시간에 개구리 해부를 경험하면서였다. 평소 모든 사물과 현상에 대해 호기심이 많았던 그는 개구리 해부 실험을 앞두고 직접 개구리를 잡아와 그 속을 들여다보는 일이 흥미로웠다고 고백한다. 남보다 일찍 꿈을 품어서일까. 최동호 교수는 외과의사로서 사는 지금의 삶이 무척 행복하다고 말한다. “제가 먼저 행복해야 한다는 게 제 삶의 모토에요. 전공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을 만큼 외과의사는 병원 내에서도 3D에 속합니다. 주어진 환경을 탓하기 이전에 지금 있는 이곳을 최고의 장소로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매사 임하고 싶어요. 그래서 후배들의 본보기가 되고 싶고요. 제가 매번 힘들어하고, 재미없어 하고 짜증을 낸다면 결국 제 후배들이 그 모습을 배우게 될 테니까요. ‘최동호 교수 정도의 삶이라면 외과의사를 해도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도록 행복하고 즐겁게 일하려고 해요.” 환자, 동료와 함께 걸어가는 길 ‘어떤 일을 시작했다면 기본적으로 10년은 해야 한다’는 철칙으로 외과의로서 자신의 영역을 구축해온 최동호 교수는 무수혈 수술 분야의 권위자가 됐다. 무수혈 수술은 환자 몸의 혈액 생산을 최대로 끌어올려 수술 시 수혈을 최소화하는 것으로 사전 준비가 꽤 까다롭다. 그러나 타인의 피를 수혈 받음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예방하고, 환자의 면역력 증가와 감염으로 인한 합병증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을 익히 판단한 최동호 교수는 무수혈 수술 연구에도 10년 이상의 공을 들였다. 그의 이런 도전은 종교적 신념에 의해 수혈을 거부하는 환자들에게도 희소식이었다. “그것이 공부든, 취미생활이든 최소 10년은 해야 노하우가 쌓이는 것 같아요. 연구 초반 3~4년은 막연하고 길이 잘 보이지 않다가 7~8년이 되면 방향성이 보이기 시작하고, 확신도 생겨요. 지금은 정착된 무수혈 수술처럼 인공 간 연구 또한 지금은 초기 연구 단계지만 앞으로 10년, 또 10년씩 꾸준히 연구하다 보면 분명 길을 낼 수 있을거라 생각해요. 만약 제가 하지 못한다면 누군가 그 길을 이어서 하겠지요.” ‘목표’가 있기에 힘이 들어도 일어설 수 있다는 최동호 교수는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꾸기에 앞서 ‘의사가 돼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구체적인 꿈을 가질 것’을 당부했다. 자신이 흔들리면 환자들이 불안해 하기에 언제나 중심축이 흔들리지 않게 다잡는다는 그는 지난해 먼저 하늘나라로 가신 아버지를 간호하면서 보호자의 애타는 심정을 경험했고, 부정맥 시술을 받으면서는 수술실의 차가운 공기를 느끼며 환자의 입장을 이해하게 됐다고 고백한다. 이후로는 수술 방에 먼저 가서 환자를 맞이하고, 수술을 마치면 보호자들을 만나 작은 것이라도 이야기 해주는 습관이 생겼다. 동료와 함께 즐겁게 일하며 외과의로서 최종 목표인 인공 간을 만들어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는 최동호 교수. ‘환자를 집에 돌아갈 수 있게 해주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그의 바람은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는 따뜻한 마음, 인간을 귀히 여기는 삶의 철학에서 비롯되고 있었다. 목표가 이끄는 그의 행복한 여정을 응원하듯 마음 속 고개 하나가 그를 향해 정중한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한양대학교의료원 의료진의 ‘喜怒哀樂’. 의사로 살아가는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2015-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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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 돌아서 만난 내 인생 최고의 의사 선생님" - 김근호 교수님께 드리는 편지
급성 신우신염과 만성 신부전 치료 후 일상을 찾은 이선구 님의 편지 지병이었던 당뇨와 고혈압, 갑상선에 이어 급성신우신염과 신부전까지… 장기간 병원 치료와 약으로 힘겨웠던 이선구님에게 한양대학교병원 신장내과 김근호 교수는 병원과 의료진에 대한 닫힌 마음과 편견을 깨 준 고마운 사람이다. 네 차례 혈액 투석의 마지막 날, 그녀는 우울함으로 치료마저 거부했던 자신에게 다가와 따뜻한 위로와 배려를 건넨 김근호 교수와 의료진을 잊지 못한다. 정리. 곽한나 사진. 정준택 고마운 김근호 교수님께 한양대학교병원 김근호 교수님께 치료를 받게 되어 고맙고 기쁜 마음으로 편지를 보냅니다. 평소 몸이 약한데다가 텔레마케터로 일하며 스트레스가 많아서 그런지 고혈압에 갑상선, 당뇨병까지 앓아왔어요. 작년 9월 말, 체중이 갑자기 줄고 헤모글로빈 수치가 떨어지면서 두 달 넘게 기침이 지속됐습니다. 처음에는 감기인줄 알았는데 도통 낫지 않아서 집 근처 대학병원을 찾았어요. 폐렴이라는 진단을 받았지만 피검사와 CT검사에서 여전히 원인을 모르는 이상 소견이 나왔죠. 더 이상 그 병원과 의료진을 신뢰할 수 없던 차에 오래 왕래했던 개인병원에서 한양대학교병원을 추천해 주셨어요. 신부전과 급성신우신염이라는 정확한 진단과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김근호 교수님을 만난 덕분이에요. 교수님은 첫인상부터 편안했어요. 내로라하는 대형병원도 여러 차례 다녀봤지만 김근호 교수님만큼 소통이 잘 되는 분은 없었죠. 매일 두 번씩 회진을 오실 때마다 제가 궁금해 할 것들을 미리 알고 이야기해 주셔서 좋았습니다. 항상 여러 가지 치료방법을 꼼꼼하게 설명해 주시고 저의 의견도 물으시고, 자연스레 교수님을 믿고 따를 수 있었어요. 지난 8월 1일 한양대학교병원에 다시 입원했을 때 휴가 중에도 하루 한 번씩 꼭 찾아와 주셨죠. 주말인 일요일에도 찾아와 주셨고요. 그래서인지 가끔은 교수님이 기다려지기도 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김근호 교수님께 치료받는 분들은 교수님이 참 자상하고 친절하다는 이야기를 자주 나누곤 해요. 김근호 교수님과 더불어 17층 간호사 선생님들께도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어요. 제가 입원할 때마다 다른 층을 권유 받아도 17층을 고집하는 이유는 17층의 의료진 여러분 모두가 참 친절하시기 때문이에요. 한양대학교병원은 의료진도 외모를 보고 뽑으시나요? 신장내과뿐만 아니라 류마티스내과, 피부과, 비뇨기과도 다 가봤지만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들이 한결같이 잘생기고 예쁘신 것 같아요. 언제나 웃으면서 말씀해 주시니 좋은 인상을 갖게 되고 덕분에 많은 용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통원치료를 꾸준히 잘 받아서 몸이 회복되면 여행을 다녀보고 싶어요. 국내도 좋지만 스위스 알프스 같은 유럽 쪽으로요. 한양대학교병원 의료진 덕분에 소망에 한 걸음 더 다가가 봅니다. 2014년 가을이 물드는 날, 이선구 드림 이선구 님에게 제가 보기에 이선구 님은 여전히 소녀와 같은 감성을 지니고 마음이 여리신 분입니다. 제가 가끔 병의 예후에 대해 부정적인 부분을 전할 때에도 크게 실망하지 않으시고 긍정적인 태도를 보여주셔서 주치의 입장에서 고맙게 생각합니다. 앞으로 장기적인 투병 생활이 이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이지만, 긍정적인 부분을 넓게 보고 꾸준한 치료를 받으시면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김근호 교수 고마운 당신에게 |한양대학교의료원 앞으로 도착한 감사의 편지를 전해드립니다.
2014-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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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 없이 연구하고 환자를 살피는 의사란 사람, 김상헌 교수
안녕하세요, 선생님 |한양대학교의료원 의료진의 ‘喜怒哀樂’. 의사로 살아가는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한양대학교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김상헌 교수 의사란 직업 자체가 인류를 위한 하나의 사명이 되는 사람이다. 그들이 입고 있는 흰 가운은 권위의 상징이기보다 모든 색을 받아들이는 흰색처럼 만인을 평등하게 대하고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다는 또 다른 다짐의 상징이기도 하다. 환한 미소로 인사를 건네는 김상헌 교수는 의사로 몸담고 있는 동안 실제 환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연구 결과물을 내고 싶다고 말한다. 훗날 후회가 남지 않도록 의사의 본분을 다하고 싶다는 그의 담담한 말 속에서 강한 의지가 엿보였다. 글. 이지연 사진. 이정민 호흡기알레르기내과의 비전을 보다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라면 김상헌 교수와 얼굴을 마주한 순간, 단박에 ‘아!’하는 탄성이 흘러나온다. KBS-TV 프로그램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비타민 등 공중파 방송은 물론 각종 매체를 넘나들며 호흡기알레르기 질병에 관한 의학 지식을 전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양대학교병원을 대표해 나간 자리이기도 하지만, 중요성이 간과되고 있는 호흡기알레르기 질병에 관해 대중에게 그 중요성을 알리고자 하는 의사로서의 사명감이 더 컸다. “본래 호흡기내과라는 명칭을 쓰다가 지난해 호흡기알레르기내과로 이름이 바뀌었어요. 내과 안에도 각 분야마다 전공이 나뉘는데, 내과의 9개 분야 중 하나의 파트가 바로 알레르기 분야라 할 수 있죠. 임상 분야로는 규모가 작아 행정단위로 독립이 어려워서 호흡기 진료도 같이 하고 있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저의 주 진료 분야는 알레르기 분야에요.” 김상헌 교수는 차분하고 청명한 목소리로 조근조근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알레르기 분야’를 전공으로 택한 이유를 묻는 대목에선 ‘속아서 결정했다’는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그 이면에는 꽃가루, 미세먼지, 집먼지 진드기 등 세계적으로 화두가 되고 있는 알레르기성 질병에 관한 비전을 보았기 때문이라는 속마음이 숨어 있었다. “사실 알레르기를 ‘내 삶에 큰 피해를 미치지는 않지만, 일상에 불편함을 끼치는 존재’ 쯤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거든요. 하지만 알레르기 역시 그 강도가 세지면 생명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지금 당장 목숨이 좌지우지되는 병이 아니기 때문에 간과되는 측면이 있는 것이죠.” ‘아나필락시스’를 아세요? 김상헌 교수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의사로서 자신의 분야에 대한 강한 애착과 자부심뿐 아니라 알레르기 분야의 중요성과 질병의 위험성을 알리고자 하는 의지가 엿보였다. “어제 한 환자가 약물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켜 응급실에 실려 왔어요. 알레르기란 것이 보통 사람에게는 별 영향을 주지 않지만, 특정인에게는 과민 반응해 인체에 해로운 영향을 주거든요. 분명 병을 낫기 위해 먹은 약인데 자칫 잘못 목숨을 잃을 뻔 했죠. 알레르기가 심하면 사람 목숨을 위협해 사망할 수도 있거든요. 이렇게 심각한 상황을 유발하는 알레르기를 의학용어로 아나필락시스(Anaphylaxis)라고 합니다. 환자에게 ‘아나필락시스에요’라고 말씀 드리면 대부분 못 알아들으시거나, 굉장히 생소해해요. 질병에 관한 교육과 홍보가 그만큼 미비하다는 뜻이기도 하죠. 그럴 때마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또렷하게 각인됩니다.” 김상헌 교수는 아나필락시스가 ‘류머티즘(Rheumatism)’처럼 들었을 때 특정 이미지가 떠오르는 질환으로 알려지길 바란다. 더불어 천식, 만성기관지염 등 호흡기알레르기성 만성 질환을 보유한 환자들이 한 명의 의사에게 꾸준히 관리 받아야 한다는 인식을 갖길 바랐다. “호흡기알레르기내과를 주로 찾는 환자는 감기 환자에요. 병의 경중이 다르기 때문에 쉽게 고칠 수 있는 병이 있는가 하면, 오랜 세월 정성을 다해 치료해야 하는 병도 있기 마련이죠. 혹여라도 호흡기알레르기성 만성질환을 겪고 계신 분이라면 당뇨병과 고혈압처럼 한 명의 의사에게 꾸준히 관리를 받으셨으면 해요. 증상이 심해질 때만 잠깐 병원에 와서 치료를 받으면 체계적이 관리가 어렵거든요. 특히 만성질환을 가지고 계신 분들은 의사와 함께 자신에게 맞는 치료법과 관리 방법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유전자 검사를 통한 약물 맞춤 치료에 관심을 갖다 면역학 박사이기도 한 김상헌 교수는 2006년 한양대학교병원과 인연을 맺었다. 대학시절부터 지금까지 20여 년을 의학계에 몸담다 보니, 이제는 병원과 연구실에 있는 것이 맞춤옷처럼 자연스럽다. 어떻게 해서 의사가 되었느냐는 질문에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는 김상헌 교수는 ‘대답이 흥미롭지 않을 것’이라며 운을 뗐다. “어려서부터 의사가 돼야겠다, 의과 대학에 꼭 가야겠다 결심했던 건 아니었지만 자연대를 가고 싶었어요. 뭔가 새로운 것을 찾고 연구하고, 사회에 기여하는 그런 일을 하고 싶었거든요. 그러다 문득 만약 내가 찾고자 하는 걸 찾지 못한다면 실험실에서 끝나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것보다는 의사가 된다면 적어도 환자들을 만날 수 있고, 그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다다랐어요.” 길은 달랐지만 그는 꿈꾸었던 일을 하고 있다. 자신이 들인 노력과 결과가 항상 일치하지는 않지만, 병의 원인과 치료방법을 찾아 환자의 상태가 호전되었을 때 그는 말할 수 없는 보람을 느낀다. 덕분에 진료와 함께 연구 분야에도 극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2009년에는 아·태 호흡기학회, 2011년에는 대한천식알레르기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최우수연제논문상을 수상하는 등 활발한 연구 활동에 매진했고, 2010년에는 윤호주 교수와 함께 1년 동안 서울의 여러 지역에서 측정한 미세먼지, 오존, 이산화황 등 대기오염 자료를 사용해 천식의 급성악화와의 연관성을 연구한 바 있다. 현재 김상헌 교수는 유전자 검사를 통해 어떤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을 때 약물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나는지에 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우리가 옷을 살 때도 사람마다 체격에 맞는 사이즈의 옷을 권하잖아요. 마찬가지로 지금까지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약을 처방했다 면, 이제는 유전자 검사를 통해 환자에게 최적화된 약물을 투여하는 맞춤 치료를 하는 것이죠. 이미 몇몇 약들은 특정 유전자가 있을 때 100% 치료 효과를 보였다는 연구 결과들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저 역시 환자에게 꼭 필요하면서도 안전한 약물을 처방할 수 있도록 유전자 검사를 통한 약물 반응 연구를 지속적으로 해나갈 생각입니다.” 김상헌 교수의 말 속에서 꼭 빠지지 않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공익’이었다. 정신 없이 달려오기 바빴던 인턴과 레지던트 시절을 지나 호흡기알레르기내과 전문의가 된 지금, 그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라와 국민을 위해 공익적인 연구를 하고자 한다. 그의 굳은 다짐이 유독 빛을 내는 이유다. “시간이 흘러 ‘이런 연구를 하느라 나의 젊음과 시간을 허비했을까’ 하는 후회가 남지 않도록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연구 결과물을 꼭 내고 싶어요.”
2014-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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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펜 한 자루로 시간의 가치를 빚다 - 박종석 한양대학교병원 기능원
다이내믹 한양 |한양대학교의료원 임직원이 들려주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통해 삶의 에너지를 전합니다. 이탈리아 피렌체 골목 어귀에서 수제화를 만드는 구두장이, 프랑스 보르도 지방에서 와인을 제조하는 농부에게서 장인 정신이 느껴지는 이유는 그들의 작품이 느린 시간의 흐름이 만들어낸 가치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볼펜으로 인물화를 그리는 박종석 환자기능원의 모습에서 진지한 장인의 모습이 느껴진다. 하얀 종이 위, 수없이 덧칠했을 가는 선들을 바라보며 볼펜 한 자루에 담긴 그의 꿈과 열정을 듣는다. 글. 황원희 사진. 박승주 보통의 재료로 그리는 특별한 그림 “이걸 전부 볼펜으로 그렸다고요?” 처음 그의 그림을 보는 사람이라면 으레 같은 질문을 같은 표정으로 묻는다. 투박한 볼펜으로 그렸다고 하기엔 너무도 섬세한 표현이 돋보이는 인물화, 아니 작품이다. 한양대학교병원에서 환자 이송 업무를 맡고 있는 박종석 기능원은 점심시간 틈틈이 휴게실에서, 퇴근 후 잠자리에 들기 전 책상 위에서 시간을 쪼개가며 볼펜으로 인물화를 그린다. 그가 볼펜을 처음 접한 건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가 쓰던 볼펜으로 끄적끄적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오랜 시간 반복된 취미는 자연스레 실력과 자신감을 쥐어주었다. “본격적으로 인물화를 그리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 되지 않았어요. 처음에는 만화 캐릭터를 따라 그리기도 하고, 주변 사물을 종이에 담기도 했는데 문득 실제 사람의 모습도 담아내고 싶더라고요. 볼펜은 제게 워낙 친근한 재료니까 더 쉽게 그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죠.” 볼펜과 친숙했던 박종석 환자기능원에게도 인물화는 꽤나 어려운 과제였다. 인내심이 필요한 작업의 특성상 60~70% 정도만 완성하고 포기하기 일쑤였다. 그렇게 미완의 작품이 쌓여 갔지만 포기한 그림들이 아까워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스스로 다짐을 했어요. ‘무조건 한 작품을 완성한 다음 새로운 작품을 시작하자’라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개인 블로그도 운영하고 있죠. 블로그에 초기 스케치부터 중간중간 과정을 올리면서 진행 상황을 공유해요. 처음에는 혼자만의 약속으로 인물화를 올리기 시작했는데 점점 많은 분이 좋은 반응을 보여줘서 굉장히 뿌듯합니다. 격려 덕분에 지치지 않고 그림을 완성해 가고 있어요.” 박종석 환자기능원은 블로그를 통해 자신의 작품이 알려지고, 인정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에 참으로 감사하다. 특별할 것 없는 볼펜으로 그려내는 그의 작품이 모두에게 기분 좋은 활력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사소한 시작에서 내일을 발견하다 볼펜을 쥔 손바닥 밑으로 티슈 두 장을 겹쳐 놓은 후 땀이 종이에 스며들지 않도록, 볼펜 찌끼가 종이에 묻어나지 않도록 수시로 확인하며 닦아내는 귀찮은 작업의 연속. 그러나 작업이 끝나고 완성품을 바라볼 때의 희열과 뿌듯함은 이 모든 것을 상쇄시킨다. 박종석 기능원은 아날로그 작업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이 순간, 그간의 노력을 보상받는다. “먼저 연필로 인물의 윤곽을 그립니다. 대신 그 외에 명암과 채색은 오로지 5가지 색상의 볼펜으로만 해결해요. 힘의 강약을 조절해 다양한 색상의 조화를 표현해 내려고 노력하죠. 예를 들면 조커의 머리카락은 주황색과 노랑색 볼펜을 이용해요. 주황색을 아주 옅게 칠하고 노랑색으로 살짝 덧칠하는 방식이죠. 머리카락 하나, 옷깃 하나 모두 제 손길이 닿아서인지 완성된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남다른 애착이 느껴져요.” 인물화를 그릴 때마다 나오는 볼펜 찌끼까지 모아두는 그의 정성은 작품의 완성도를 점차 높여 나간다. 그림의 완성도는 그가 작업에 투자하는 시간과도 비례한다. “사실 완성품이 많지 않아요. 작품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 최소 100시간에서 최대 150시간까지 걸리거든요. 워낙 섬세한 작업이다 보니 결 하나를 표현하는데도 조심스럽죠. 재미있는 건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 데 볼펜을 한 자루 이상 사용한 적이 없어요. 필기하듯이 꾹꾹 눌러 쓰는 게 아니라서 생각보다 볼펜이 많이 필요하지 않거든요.” 하나, 둘 작품을 완성해 가면서 박종석 환자기능원은 자신의 이름을 건 개인 전시회도 구상 중이다. 당장은 어렵지만 지금부터 차곡차곡 작품을 완성해 훗날 전시하겠다는 계획이다. “아직도 계속 배워가는 중이지만 언젠간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리고 싶어요. 물론 인물을 섬세하게 표현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겠지 만요.” 볼펜 한 자루에서 시작된 사소하지만 멋진 시도는 기분 좋은 에너지를 내뿜는다. 반복되는 일상 속 자신만의 재능을 특별한 가치로 바 꾸는 박종석 환자기능원의 꿈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박종석 기능원 블로그 (http://blog.naver.com/77iori)
2014-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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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웃고 뛰며 通하다, 한양대병원 교직원 친선 족구대회
다이내믹 한양 | 한양대학교의료원 임직원이 들려주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통해 삶의 에너지를 전합니다. 햇살이 눈부시던 5월의 토요일 오후, 제2회 한양대학교병원 교직원 친선 족구대회가 열렸다. 총 10개 팀이 참여한 이번 대회는 교직원은 물론 교직원 가족들 모두가 하나로 뭉친 소통과 화합의 장 이었다. 글. 정라희 사진. 박승주 가정의 달, 온몸으로 호흡하다 살곶이체육공원이 족구 경기로 한바탕 들썩였다. 흔히 ‘경기’라고 하면 경쟁과 승리를 떠올리곤 하지만 이번 행사만큼은 그 의미가 조금 달랐다. 다양한 직군의 교직원이 동참해 경쟁이 아닌 소통과 화합에 주목한 것이다. “지난해 열린 첫 대회는 공식 행사라기보다는 친목모임에 더 가까웠어요. 예상외로 많은 부서에서 참여 의사를 전해 와서 대회를 성황리에 마쳤죠. 소식을 접한 병원장님이 ‘좋은 행사인데 지속해서 추진 해보라’고 격려해주신 덕분에 올해부터 병원 공식 행사로 자리하게 되었어요.” 한양대학교병원 축구동호회 한양FC의 회장직을 맡고 있는 권문상 계장은 지난해 이미 제1회 교직원 친선 족구대회를 제안하고 추진한 바 있다. 그는 한양대학교병원 교직원들이 한 공간 속에서 함께 호흡하는 이 자리가 앞으로도 지속되길 바란다. “축구동호회 회원의 가족들은 경기가 있을 때마다 같이 모여 응원을 해요. 덕분에 다른 교직원 가족들과 친분을 나눌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죠.” 축구동호회 회원인 통신계 이윤섭 계장의 아내 김윤경 씨 역시 응원도 하고, 새로운 사람도 만나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이 자리가 즐겁다. 오후 1시부터 시작한 족구대회 예선은 토너먼트가 아닌 리그전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A조, B조 각 5개 팀으로 나뉘며 조별로 돌아가며 예선전을 치른다. 추첨 방식으로 편성된 A조에는 영상의학과팀, 진단검사·병리팀, 시설A팀, 축구부A팀, 환자이송팀이 B조에는 원무·행정팀, 영상의학과팀, S-TEC팀, 축구부B팀, 시설B팀이 배정되었다. 두 개의 코트에서 동시에 울린 호루라기 소리가 예선전의 시작을 알렸다. 서로의 비타민이 되어 마주보다 아무리 아마추어들의 친목대회라고 해도 자존심을 건 승부 앞에서 대충대충은 없다. 빠르게 네트 위를 오가는 공에 힘과 속도가 붙는다. 경기를 지켜 보는 관중들도 손에 땀을 쥐고 경기에 집중한다. 한 팀당 선수 등록은 다섯 명이지만 실제 경기에 나서는 건 네 명의 선수뿐. 지난해에는 선수로 뛰었지만 올해는 후보로 남아 팀의 전력을 지원하는 환자이송팀 최대훈 직원은 분주하게 공을 쫓는 팀원들을 응원한다. “지난해 대회에서 많은 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이번 대회를 통해서 서로 얼굴을 익히고 나면, 다시 업무에 복귀했을 때 더욱 시너지가 생기지 않을까요?” 치열하게 진행된 예선전은 예상했던 시간을 훌쩍 넘겨 오후 6시가 지나서야 비로소 끝이 났다. 엎치락뒤치락하는 경기 끝에 마지막 승부에 나선 두 팀은 시설B팀과 S-TEC팀. 1세트 초반에는 S-TEC팀이 경기를 몰아치며 점수를 냈다. 하지만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은 이번 족구대회에서도 마찬가지다. 1:1의 세트 스코어 끝에 시작한 3세트에서 시설B팀이 끝내 2:1로 우승을 일구어냈다. 우승 트로피를 받은 시설B팀의 주장 이승섭 계장은 길었던 경기의 여운을 느끼며 우승 소감을 전한다. “준결승에서 축구부B팀과 붙으면서 많이 고전을 했습니다. 그 고비를 넘기고 나니 팀원들도 자신감이 붙은 것 같아요. 팀원들이 끝까지 최선을 다해준 덕분입니다.” 어느새 어둑해진 주변을 뒤로하고 경기를 마친 한양대학교병원 가족들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하다. 마음을 모아 함께 뛰고 웃으며 보낸 오늘 하루가 다시 시작할 병원에서의 일과에 든든한 비타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2014-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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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장기’ 간에 대해 ‘침묵하지 않는’ 사람. 전대원 소화기내과 교수
안녕하세요, 선생님 | 한양대학교의료원 의료진의 ‘喜怒哀樂’. 의사로 살아가는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전대원 한양대학교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소화기내과에서 간질환을 전문으로 진료하는 전대원 교수는 환자와의 대화나 간에 관한 각종 연구에 열정을 불사르는 의사다. 환자의 진료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어려운 의학용어 대신 쉽게 설명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 그는 좋아하는 일에 미친 듯이 빠져드는 것을 즐기는 사람. ‘간질환 연구에 미쳐있는 지금이 행복하다’는 전 교수는 천생 타고난 의사다. 글. 이지연 사진. 정준택 환자였던 아이, 의사가 되다 만나면 응석을 부리고 싶은 사람이 있다. 편안한 인상에 환한 미소로 환자를 맞는 전대원 교수 앞에 서면 물어보지 않은 이야기까지 술술 뱉어내게 된다. 아무리 긴 하소연을 해도 다 들어주고 위로해 줄 것 같은 첫인상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전 교수에게도 해당하는 대목이다. 말하는 양으로 따지면 ‘분명 아줌마의 피가 흐른다’고 농담처럼 말하는 전 교수는 더 많은 환자와의 만남을 갖기 위해 외래 진료일을 늘렸다. ‘환자의 만족도가 높은 의사가 좋은 의사’라 생각한다는 그는 그 일환으로 평소 어려운 의학용어를 쉽게 설명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환자에게 병명을 정확하게 설명해드렸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되묻는 경우가 다반사였어요. 자기의 정확한 병명을 모르고 퇴원한 환자도 많았고요. 그런 경험을 여러 번 거치면서 환자의 눈높이에 맞게 쉽게 설명하는 방법을 고민하게 됐습니다.” 전대원 교수 역시, 어린 시절부터 병원과 친숙한 인생이었다. 그래서 환자의 입장과 고충을 그 누구보다 이해하는 의사이기도 하다. 지금은 말 잘하는 의사에 속하는 그도 입천장이 붙어 있지 않는 구개열을 가지고 태어나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말 못하는’ 유년을 살았다. 2~3차에 거친 수술과 1년간의 언어교정 등 지리한 치료과정을 거쳤음에도 전 교수의 기억 속에는 병원과 치료에 대한 좋은 기억들이 더 크게 자리한다. “말을 못한다, 이상하게 한다며 놀림을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말을 잘 안했죠. 여러 차례 수술을 하면서 힘든 과정도 있었지만, 조금씩 나아지는 걸 몸소 느낄 때마다 병원 가는 일이 재미있더라고요. 그 때의 수술 덕에 지금은 말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부모님의 권유와 어린 시절의 경험을 통해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전대원 교수. 그렇게 병원을 제 집 드나들 듯 했던 소년은 의사면허를 취득하고 정식 의사가 되었다. 자각증상 없는 간, 정기검진만이 살 길 전대원 교수가 속한 소화기내과 의사들은 대부분 하루 종일 내시경을 하느라 육체적 피로감이 높은 편이다. 그에 비해 간질환 전문인 전 교수는 외래를 제외하고는 매일 실험하고 연구하는 것이 일상이라 ‘편안한 보직’에 속한다고. “저를 찾는 환자들은 간이 나빠져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본인의 잘못된 습관에 의해 간경화나 간암이 발병한 경우와 어머니로 부터 물려받은 수직간염인 ‘B형 간염’에 걸려 찾아오는 경우, 비교적 완치가 가능한 C형 간염 환자들이 대부분이죠. 모든 의사의 맘이 똑같겠지만 저 또한 환자를 완치시켰을 때 보람을 느낍니다. 의사로서 해줄 수 있는 게 있으니까요.” 우리 인체의 여러 장기 중 크기가 가장 큰 간은 온갖 궂은일을 군소리 없이 해내는 우직한 기관이다. 사람이 영양분을 섭취하면 당이 제일 먼저 간으로 이동해 저장을 하고, 각 기관으로 보낸다. 몸속에 세균이 침투하면 그걸 막아내는 면역 기능은 물론 해독작용도 하는 아주 중요한 장기다. 그럼에도 80% 이상이 훼손됐을 때 심각성을 느낄 만큼 자각증상이 없어 ‘침묵의 장기’로도 불린다. “간에는 통증을 느끼는 세포가 없어서 혹이 생겨도, 반으로 쪼개도 아픔을 느끼지 못해요. 정기적인 검진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그러나 비용적인 문제 때문에 정기검사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기도 하죠. 하여 간질환이 걸릴 것 같은 위험군을 가진 사람들, 예를 들어 B형 간염, C형 간염 보유자나 간질환 가족력이 있는 분들은 6개월에 한 번씩 꼭 초음파나 피검사를 받으셨으면 합니다.” 전대원 교수는 20여 년 간 간질환 연구 및 진료를 맡으면서 안타까운 현실들을 자주 목도했다. 그중 30대 초반의 한 여성 환자는 그의 삶에 큰 울림을 남겼다. 건강한 식습관을 지켜왔음에도 B형 간염이 악화돼 간암 말기 진단을 받은 이 환자는 젊은 나이임에도 사회에 보탬이 되고 싶다며 의과대에 사체기증 의사를 전했다. “현실을 부정하고 원망하는 게 보통의 모습인데 죽음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그 환자 분을 보면서 도리어 많은 것을 깨우치고 배웠습니다. 의사로서 더 열심히 환자들을 봐야겠다는 생각, 더 다양한 연구를 통해 의학에 보탬이 돼야겠다는 자극을 받았죠.” 아침 5시면 일어나 1시간가량 운동을 하고 출근한다는 전대원 교수의 변함없이 반복적인 일상은 자신의 건강과 환자의 건강을 돌보고자 하는 작은 노력인 셈이다. 치료를 위한 총체적 접근 방법 연구 실험과 연구를 즐기는 전대원 교수는 대한간학회에서 수여하는 우수논문상을 거의 매년 받아 왔다. 특히 2013년에는 600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한 ‘영양교육의 효과를 측정해보는 연구’를 진행해 우수논문상을 수상했다. 잘못된 식습관으로 생긴 질병에 대처하고 환자의 생활습관을 바꾸기 위해서는 환자를 대상으로 한 식이교육이 먼저라는 생각에서였다. 환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5일간 섭취한 음식의 종류와 양을 꼼꼼히 기록한 일지를 환자가 우편으로 보내오면 그것을 연구진이 분석해 다시 환자에게 보내고 상담하는 방식이었다. “환자들이 싫어하고 귀찮아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고마워 했어요. 실험에 참가한 환자들 몸무게가 평균 4kg 감량하는 효과도 봤고요. 그러한 결과를 보면서 우리 의사들이 너무 무심했구나, 약물이나 수술적인 방법에만 너무 의존하지 않았나 반성하게 됐습니다.” 전 교수는 “이제껏 누구도 내게 이런 교육을 해준 적이 없었다”는 환자들의 의견을 들으며, 향후 심도 있게 연구하고 도전하고 싶은 분야를 정했다. 섭취 칼로리의 증가에 비해 운동량이 부족해 잉여 칼로리가 지방 형태로 간에 축적되는 ‘지방간’에 관심이 많은 전 교수는 총체적 접근 방법을 시도해보고 싶다고 한다. “지방간은 비만과 관련 있어요. 환자가 무엇을 잘못 먹고 있는지, 잘못된 생활습관은 없는지, 이를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등을 보는 거죠. 지방간 환자가 오면 내과의도 보지만, 영양사를 비롯해 운동처방사, 정신과 전문의가 함께 입체적으로 환자를 파악하고 서비스할 수 있는 팀이나, 센터를 만드는 게 제 꿈입니다.” 지방간과 관련해서 좀 더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환자 치료방법 및 접근방법을 연구하고 싶다는 전대원 교수. 그의 꿈이 지방간 환자들을 치료하는 새로운 시도, 새로운 초석이 되기를 함께 희망해본다. ‘간에 푹 빠져있는 의사’라 표현해도 과히 넘치지 않는 전 교수의 다양한 연구와 그 결과들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2014-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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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들을 잘 보는 의사, 그게 좋은 의사죠 - 박병배 혈액종양내과 교수
슈바이처는 남다른 인류애를 실천한 의사였고 노먼 베쑨은 의사이자 프론티어 정신으로 무장한 개척가였다. 한양대학교병원 혈액종양내과의 박병배 교수는 환자들이 가족 만큼이나 친근하게 여기는 의사다. 슈바이처도 베쑨도 모두 훌륭한 의사지만, 박 교수가 되고 싶은 의사란 미사여구 다빼고 그저 환자들을 잘 보는,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 냄새나는 의사다. 세심한 성격에 안성맞춤인 전공 “뭐니 뭐니 해도 환자를 잘보는게 최고의 의사겠죠?” 그의 가슴 속에는 의사에 붙는 온갖 미사여구는 차지하더라도, 환자와 친한 의사가 되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이 자리하고 있다. 화학 공학도를 꿈꾸었던 그는 입시 공부를 하던 시절 알게된 한 친구의 영향으로 의학도가 되었다.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 나란히 의사가 되고 싶은 꿈, 그리고 선의의 경쟁이 유도한 방향 선회였다. ‘혈액종양내과’라는 다소 이색적인 전공은 숙명처럼 그에게 다가왔다. 말마따나 그가 전공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전공이 세심한 성격의 그를 선택한 것. 림프종, 고형암, 혈액질환, 그리고 골수이식까지, 희귀병이나 희귀암 범주로 다루어지는 분야가 그의 전문이다. 전공이 전공이다 보니 남들보다 꼼꼼하고 세심해질 수밖에 없다. “이 일을 하면서 느낀점이 제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 이었어요. 책으로 공부하던 것보다 실제 환자들을 만나는 것이 훨씬 더 흥미로웠거든요. 아는 것과 해보는 것은 역시 다르더군요.” 그가 현장에서 만난 실제는 이론과 많이 달랐다.그의 주 종목이랄 수 있는 혈액암이 희귀암이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던 지식이었지만, 우연히 겪게 된 그 희귀암이 환자들의 삶을 어떻게 바꿔 놓는지는 현장에서 직접 목도하고서야 깨닫게 되었다. 그건 평면적 지식과 입체적 체험으로 대비할 수 있을만큼 간극이 큰 경험이었다. 그런 경험들을 토대로 그는 어떤 의사가 되겠다는 크나큰 포부보다는 이런 의사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작지만 소중한 사명감을 갖게 되었다. 진심어린 소통만큼 감동적인 치료는 없어요 “의사니까 병 치료만 하는 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환자들과 진심어린 소통을 하는 게 치료만큼이나 중요하더라고요.” 그는 암이 말기에 이르러서야 아버지를 병원으로 모셔온 보호자들을 기억했다. 모처럼 명절에 찾은 아버지가 유난히 쇠약해 보여 검진을 받게 한 결과 암 말기라는 청천벽력 선고가 떨어진 경우였다. 죄책감을 느낀 아들은 ‘이미 늦었다’는 박 교수의 고언에 아버지를 고쳐내라며 가슴을 후려쳤다. 한계가 보이는 환자들에게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줄 수 없음이 그는 마음 아팠다. 인터넷의 발달로 의료정보가 워낙 개방되어 있는 탓에 거짓말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느냐고 묻는 환자나 가족들도 거의 없다고 한다. 시간 싸움이자 자기와의 싸움인 병상이 얼마나 외로운 자리인지 그는 잘안다. 그래서 그는 환자들에게 친구 같은 의사가 되어주기로 마음 먹었다. ‘영원한 난제’인 사람을 더 잘이해하고 싶어, 한 때는 심리학 관련 서적이나 자료들을 뒤적여 보기도 했다. 착한 의사와 좋은 의사 사이에서 기회비용을 지불한 끝에,그는 환자와 그들 가족에게도 정리 할 수있는 시간을 줄 필요가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사실 그때 의사로서 한계를 느껴요. 시간이 생기면 전공과목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생각도 그래서 더 강해졌어요. 환자들을 만날 때마다 어쩌면 이 분들이 겪고있는 상황이 나 또한 실제로 겪을 수 있는 문제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요. 제겐 거창한 미래를 계획하는 것 보다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게 더 중요합니다.” 직업은 박 교수의 인생관까지 바꾸어 놓았다. 오지 않을 미래를 전제하는 대신 그는 ‘지금 잘 살자’는 철학을 갖고 있다. 주로 만나는 게 우리나라 성인 사망원인 1위라는 ‘암’ 환자이다 보니, 생이 얼마 남지 않아 생이 절실해진 환자들을 보면서 절실히 깨달은 진리다. “매스컴에서는 암 치료 기술이 발전했다고 떠들어대지만 사실 50년 전과 비교하면 크게 나아진 것도 없어요. 예전에는 불치병으로 다스려졌지만 지금은 완치병이 된 종양이 일부 있다는 것 정도가 달라진 점이랄까요? 지금이 과도기예요. 앞으로 신약 개발이 활발해지면 지금보다는 완치 가능성이 더 커질 거라고 기대하고 있어요.” 더 많은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그는 오늘도 항시 대기중이다.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싸우고 있는 환자들의 공포를 이해하기에 휴식조차 기꺼이 반납할 수 있는 것이다. “늘 스탠바이 상태죠. 언제 어디서 저를 필요로 할 지 모르니까.” 최고보다는 최선을 지향하는 의사이고파 “림프종은 최근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된 분야에요. 완치율이 70%에 이를 정도로 완치가 잘 되다 보니 그만큼 더 의욕적으로 매달리게 되는 것 같아요. 일 년에 4천 명 정도가 림프종으로 병원을 찾으니 백혈병보다 발병 빈도가 높다고 봐야 되겠죠. 그중 20퍼센트는 흔치 않은 희귀 림프종 환자들이에요. 일반 림프종과는 다르게 치료를 해야 하지요.” 현 의료보험 체계가 다른 환자들보다는 암 환자를 많이 배려하고 있기는 하지만 정부 차원의 지원이 미흡하다는 현실적 고민도 곁들인다. “우리나라에서는 40대 중반에서 50대 초의 가장이 암 환자로 드러누우면 가정이 붕괴되는 상황이잖아요.정부 차원에서 이들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줬으면 좋겠고요. 또 선진국처럼 전문가로 구성된 암 전담 팀이 암 환자들을 전방위로 케어 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추어졌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지금은 요원해 보이는 개인형 맞춤치료가 가능 할 겁니다. 그게 언제든, 꼭 정착되어야 할 시스템이 기도 해요.” 의사와 간호사, 여기에 영양사, 약사, 사회사업가, 심리치료사 등 전문가 집단이 유기적인 하나의 팀을 이루어 암 환자들을 물리, 심리적으로 돌보는 ‘팀 어프로치’가 국내에 하루빨리 정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올해는 기다려왔던 골수이식센터의 리모델링이 완성되는 해다. 일이 더 바빠질 거라면서도 새롭게 옷을 갈아입은 센터의 개장을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다. 당장 열심히 사는 것 외에 특별한 꿈이나 희망이 없다면서도 가슴 속에 언젠가 푸른 새싹을 틔울 수 많은 씨앗을 심어둔 그이다. 지금 하고있는 일을 더 잘 할 시간마저도 모자란다는, 현실적인 인식이 낳은 지극히 현실적인 장래 희망이 있다면 ‘환자를 열심히 보겠다’는 것. “앞으로 최고의 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없어요. 지금 당장 열심히 환자를 보는 의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밖에!”
2014-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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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볼 일 많은 남자 - 김태곤 한양대학교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한 기관에서 운영하는 천문회의 회원이었던 그는 한 달에 한 번 밤을 꼬박 지새우며밤하늘을 올려다봤다. 땅거미가 내리고 어둠이 찾아오면 드디어 하늘에 별이 반짝인다.기실 별보다 더 반짝인 건 ‘소년 김태곤’의 눈이었는지 모른다. 김태곤 한양대학교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새 꿈, 새 삶 선물해드릴게요! 유년시절, 나이답지 않은 진득함과 집중력 덕분에 ‘강태공’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그땐 그저 낚시꾼인 줄 알았지만 좀 더 성장한 다음에 사전을 찾아보니, 혼란스러운 세상에 곧고 지혜로운 처세로 미래를 준비한 인물이 바로 강태공이었다. 의사가 된 소년은 재활의학 분야에서 강태공 못지않은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다. “현대 의술에 한계를 느끼는 순간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요. 뇌병변, 척추손상 환자의 경우 의료적 치료는 외상이나 질병에 대한 병소를 치유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아요. 환자가 장애를 입었을 때 남아있는 기능으로 일상생활은 물론이며 직장생활까지 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치료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지요. 저를 믿고 찾아온 환자들이 다시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백방으로 도와드리다 보면 하루가 쏜살같이 지나갑니다.” 본과 3학년 때 AMSA(아시아의대생연합회) 회장으로도 활약한 김태곤 교수는 1996년 AMSA 학술대회를 한양대학교에서 개최하면서 대회 주제를 ‘재활의학’으로 정했다. 대한민국의 자존심을 걸고 논문과 대회를 준비하면서 “환자 입장에서 다시 사회로 돌아가는 일이야말로 치료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라고 총장을 설득해 전폭적인 지원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밤새워 의학의 미래를 논하고 더 나은 의술을 꿈꾸던 20대 의대생의 열정에 30대의 신념과 40대의 연륜이 보태져 세상을 더욱 건강하게 만드는 원칙이 생겼다. “유능한 의사는 기본 중의 기본이고, 환자의 몸 상태는 물론 마음까지 읽을 줄 아는 의사가 되고 싶어요. 어려운 일이지만, 궁극적으로 환자를 행복하게 해주는 의사가 되고 싶고요. 그래서 아주 소소한 일부터 시작했지요. 보통 환자들이 병원에 올 때는 나쁜 소식을 들고 오잖아요. 똑같은 상황이라도 저는 환자에게 좋은 소식 위주로 전해드리려고 노력해요. ‘이렇게 치료하면 이런 점이 나쁘다’는 말 대신 ‘이렇게 치료하면 이렇게 발전할 수 있다’는 말을 더 강조하는 거죠.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이니까요.(웃음) 가령 루게릭병의 경우 환자들 스스로 ‘죽는 병’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데다 실제로 아직은 이렇다 할 치료법이 없는 상황이에요, 재활치료와 의료진의 역할이 그래서 더욱 중요합니다. 환자들에게 ‘희망’이 사라지는 순간 치료는 더 이상 아무 진전도 의미도 없거든요.” 그는 의사다. 그리고 더 건강한 미래를 준비하는 ‘강태공’이다. 환자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나아가 사회의 구성원으로 다양한 사회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하겠다는 김태곤 교수는 게릭병·파킨슨병 치료와 연구는 물론 건강강좌에도 두 팔을 걷어붙였다. 매주 한양대학교병원이 위탁·운영하는 성수재활의원에 매주 나가 뇌병변이나 척추손상으로 일상생활이 어려운 환자들에게 희망을 안기고 있다. 기왕 의사 직업을 갖고 사는 몸, 큰 심호흡으로 가능한 많은 사람의 질병을 치유하는 일은 그리 거창하지도 그리 어렵지도 않은 미션이란다. 온 세포가 병원에 집중돼 있다 보니 아내에게는 ‘천하의 몹쓸 남편’으로 낙인 찍혔지만, 당장 죽을 것만 같던 환자들이 소생해 웃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보상을 받았노라고 했다.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대화와 웃음을 치료약 삼아 즐기는 동안, 김태곤 교수는 환자와 한 뼘 더 가까워졌다. 재활의 기본은 희망, “포기하지 마세요!” 천체물리학 빅뱅이론에 심취한 소년이었지만 돌이켜 보면 근본적인 관심은 ‘생명’이었던 듯하다. 우주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생명은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것인지에 관해 머리 싸매고 고민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별자리 설명을 위해 만들어진 천체투영기의 인공 불빛만 봐도 가슴이 떨렸는데, 진짜 하늘 속 별빛을 보게 된다면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어요. 천문회 회원이 되고 나서 한 달에 한 번 천체 관측을 할 때마다 꼭 우주로 소풍을 떠나는 기분이었죠.” 늦은 밤 연구하다 갑갑할 때면 병원 옥상에 올라가 별을 관측하는 게 유일한 취미생활이다. 함께하는 이들이 있어 그의 별보기는 더욱 빛이 난다. 병실에 누워있는 환자들에게 밤하늘의 빛나는 별을 보여주고 싶어 김태곤 교수는 종종 ‘별 보기’ 놀이를 권하고 있다. 병마에 주눅 들었던 아이들이, 몸과 마음이 약해진 어른들이 환한 웃음을 되찾는 모습을 보고 나니, 바쁜 일정 틈틈이 짬을 내어 취미활동을 공유하게 됐단다. 매번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하늘과 별을 볼 때마다 우주 속 귀한 인연임을 실감한다. 진심을 알아주는 환자가 늘고 있다는 건 분명 반가운 청신호다. 환자와 상담하고 치료하고 연구하고 강연하는 매 순간 밤하늘이 알려준 인생의 순리를 되새기며 김태곤 교수는 안정감과 즐거움을 느낀다고 했다. 병원 안팎에서 빛나는 ‘인생 여행안내서’를 들고, 이 천진난만한 남자는 환자와 진득한 반성장에 나선 참이다. “재활의 기본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 겁니다. 일반재활, 호흡재활, 난치병 재활 등 모든 질환이나 부상에서 재활은 단번에 끝나는 것이 아닌 만큼, 강한 의지를 갖고 적극적으로 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죠. 5년 전 스물다섯 창창한 나이에 교통사고로 사지가 마비된 척추손상 환자가 저를 찾아왔어요. 택배 일을 하며 열심히 살던 자신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하더군요. 실제로 처음 만났을 땐 세상 모든 일에 대해 화가 많이 나 있던 상태였어요. 우울증도 심했고요. ‘얼마든지 일상생활이 가능하다’는 용기와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라는 희망을 주는 일부터 시작했지요. 손 일부의 힘이 남아있으니 휠체어를 타는 일부터 해보자고 설득한 끝에, 온종일 누워만 지내던 친구가 지금은 장애인스포츠까지 도전하고 있어요. 결혼할 여자친구도 생겼다더군요. 본인 말로는 사고 전보다 훨씬 더 밝은 사람이 된 것 같대요. 죽음만 생각하던 청년이 더 나은 삶을 꿈꾸게 됐으니, 의사에게 이보다 더 큰 보람은 없을 겁니다.” 먼 훗날 자신의 환자들에게 ‘살 맛 나게 만들어준 의사’였다고 기억된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는 김태곤 교수는 “조금 더 욕심을 내어본다면, 전공의들에게 전문지식과 더불어 알토란 같은 지혜를 나눠주는 멘토가 되고 싶다”는 말로 또 한 차례 업그레이드될 재활의학과의 내일을 예고했다. “사실 별들은 자신만의 빛을 지구로 보내고 있는데 이 우주의 색이 지구인에게는 저마다 다른 색으로 보이는 거래요. 까만 하늘의 하얀 별은 그러니까 우주의 오묘한 빛깔을 잘 모르는 지구인들의 눈에 보이는 양상일 뿐이고요. 지구에 없는 빛이라서 말예요. 의사로서 저는 환자 개개인이 지닌 고통과 의지와 꿈을 읽어낼 줄 아는 조력자가 되고 싶어요. 쉽진 않겠지만 부단히 정진하다 보면 언젠가는 환자도, 저도, 우리 병원도 찬란하게 제 빛을 발할 날이 오겠죠.” 오늘도 늦은 밤 병원을 나서는 김태곤 교수의 어깨에는 그가 도저히 내려놓지 못하는 재활의학 관련서적이 한아름 얹혀 있을 것이다. 무겁다는 불평은 잊은 지 오래다. 그 안에는 책의 무게만큼이나 묵직한 삶의 의미와 그가 꿈꾸는 미래가 고스란히 담겨 있으니 말이다. 어쩌면 김태곤 교수의 어깨 위에 얹혀 있는 것은 그를 반짝이는 별로 변신시켜줄 그만의 광활한 우주인지도 모르겠다. 병실에 누워있는 환자들에게 밤하늘의 빛나는 별을 보여주고 싶어 김태곤 교수는 종종 ‘별 보기’ 놀이를 권하고 있다. 병마에 주눅 들었던 아이들이, 몸과 마음이 약해진 어른들이 환한 웃음을 되찾는 모습을 보고 나니, 바쁜 일정 틈틈이 짬을 내어 취미활동을 공유하게 됐다. 환자와 상담하고 치료하고 연구하고 강연하는 매 순간, 밤하늘이 알려준 인생의 순리를 되새기며 안정감과 즐거움을 느낀다. 글. 윤진아 / 사진. 김상민
2013-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