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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 그리고 사랑에 대한 이야기 - 심장내과 김경수 교수
한양대학교병원 심장내과에 가면 핑크빛의 브로슈어를 만날 수 있다. 협심증, 심근경색 등 심장에 관한 기본 정보가 알기 쉽게 담겨 있어 환자들은 물론 의료진 사이에서도 인기다. 이 브로슈어는 김경수 한양대학교병원 심장내과 교수에 의해 생명을 구한 한 환자에 의해 제작됐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한양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김용범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김경수 한양대학교병원 심장내과 교수 김용범 한양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스승의 날을 앞두고 들이닥친 심장 고통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한 시각은 밤 10시 30분. 고통을 참다 못해 한양대학교병원을 찾은 시각은 새벽 2시. 급성심근경색으로 응급실에 실려온 김용범 교수의 수술이 시작됐다. “심장을 위에서 짓누르고 옆에서 찢는 듯한 끔찍한 고통이었죠.” 당시 상황을 떠올리는 김용범 교수의 표정에서 긴박함이 느껴졌다. 새벽에 연락을 받고 달려와 수술을 집도한 이는 심장내과 김경수 교수. 그의 신속하고 정확한 시술 덕분에 막힌 혈관이 뚫리자, 김용범 교수에게 이내 평안함이 밀려 왔다. 스승의 날을 며칠 앞둔 날이었다. 제자들의 꽃보다 아름다운 재능기부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72학번 출신인 김용범 교수는 모교의 문화콘텐츠 학과를 신설하고 이끌어 온 장본인이다. 교수 임용 전 한국문화예술진흥원과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서 20년 가까이 일하면서 몇 편의 소설과 극작품을 발표한 작가이기도 하다. “글 쓰는 사람에게 영혼의 양식이 뭔 줄 아세요? 술, 커피, 담배죠” 라고 운을 뗀 그는 급성심근경색 발병 전날까지 매일 담배 3갑을 태우고 소주 2병을 마셨다고 했다. 호탕하고 건강했던 교수님의 갑작스러운 수술 소식에 놀란 문화콘텐츠학과 제자들의 병문안이 이어졌다. “제자들이 올 때마다 심근경색에 대해 설명해야 했어요. 관련 지식도 없는데다 하루에도 여러 번 같은 말을 반복하니까 ‘이건 아니다’ 싶었습니다.” 묘안을 떠올린 김용범 교수는 제자들에게 과제를 냈다. 심장내과를 찾은 환자와 일반인들을 위한 가장 쉽고, 따뜻한 브로슈어를 기획하는 것이었다. 본격적인 제작은 박사과정에 있으면서 모바일콘텐츠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신현덕 대표가 맡았다. 비용 역시 제자들이 십시일반으로 마련했다. 신현덕 대표는 “스승의 날을 맞아 김용범 교수님께 드리는 선물이자, 심장내과 김경수 교수님을 비롯한 의료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꽃다발보다 훨씬 의미 있는 일이었죠”라고 말했다. 브로슈어 1,000부를 선물 받은 심장내과 김경수 교수는 “정성이 가득한 아주 예쁜 카드를 받은 느낌이었습니다. 의사로서 제 할 일을 했을 뿐인데, 무척 감동적이었죠. 브로슈어를 받은 많은 분들도 같은 느낌일 겁니다” 라고 소감을 말했다. 내 인생의 모멘텀, 의지와 열정 갖게 해 김용범 교수는 급성심근경색 수술이 인생의 ‘모멘텀(방향 전환)’이었다고 전한다. 급성심근경색 수술이 회복될 무렵, 검진으로 직장암 3기도 발견됐기 때문이다. 김용범 교수는 “그 날 새벽에 응급실로 실려오지 않았다면 직장암도 발견되지 못했을 겁니다. 이제 정년이 5년 남았는데 그 기간 동안 제자들을 열심히 가르치라는 의미인 것 같아요. 앞으로 한양대학교병원을 위한 문화 특강 등 다양한 재능기부도 이어나가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스스로 건강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갑자기 질병을 맞닥뜨리면 절망에 빠지기 쉽죠. 하지만 저처럼 긍정적으로 받아드린다면 반드시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것입니다”라는 의미있는 말을 남겼다. 글. 곽한나 사진. 박승주
2013-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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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뛰어 넘는다 - 박훈기 가정의학과 교수, 전재범 류마티스내과 교수
매 순간이 고비다. 길던 짧던, 춥건 덥건 한계는 찾아온다. 왜 달리게 된 건지, 누구로부터 시작된 건지 더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느 순간 뛰고 있었고, 멈출 수 없었을 뿐이다. 더위가 기승을 부린 지난 7월의 어느 날, 마라톤대회에 참가한 동갑내기 박훈기 교수와 전재범 교수를 만났다. 누가 등 떠민 것도 아닌데 이들은 왜 이토록 ‘달리기’에 ‘매달리는’ 걸까? 구름 한 점 없는 날씨, 나무 한 그루 없는 한강. 달리기에는 다소 무시무시한 조건이다. 그러나 여의도한강시민공원은 이른 아침부터 마라톤대회에 참가하는 선수들로 북적였다. 한쪽에서 몸을 풀고 있는 한양대학교병원 박훈기 가정의학과 교수와 전재범 류마티스내과 교수. 경기를 앞둔 두 선수의 얼굴에는 긴장감보다 기대감이 어려 있었다.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달리고 있다는 박 교수는 오늘 하프코스를, 몇 년 만에 달려본다는 전 교수는 10km에 도전한다. 운동화에 단 칩이 출발점과 도착점에서 정확하게 기록을 측정해줄 것이다. 출발선에 나란하게 선 두 사람. ‘탕’하는 신호음과 함께 수백 명의 러너들은 일제히 온유한 바람을 갈랐다. 멈출 수 없는 유혹, 몰아(沒我)의 경지 전재범 교수가 마라톤을 시작한 것은 1997년 아내와 함께 춘천에 갔을 때였다. 일반인에게 막 문을 연 춘천전국마라톤대회에 심심풀이 삼아 ‘한번 나가볼까?’ 했던 것이 계기. 지금은 잠시 쉬고 있지만, 그 후로 1년에 한두 번씩은 꼬박꼬박 풀 코스를 뛰었고, 하프는 가뿐하게 달릴 정도가 되었다. 개인 최고기록은 첫 풀 코스 완주에서 세운 4시간 34분. 전국 규모의 마라톤경기에 서는 중간 정도에 해당하지만 “연습 없이 이 정도로 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며, “타고난 마라토너”라고 박교수가 거들었다. 수영과 조깅을 즐기던 박훈기 교수는 2003년 동료의 권유로 마라톤대회에 처음 참가했다. 체격이 큰 편인 그는 마라톤에 적합한 체질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매일 쉬지 않고 달리며 총 25번의 풀 코스를 달렸고, 1년에 6~7번의 마라톤대회에 참가할 정도로 마니아가 되었다. 최고기록은 4시간 9분, 풀 코스 완주 세번째 만에 얻은 결과다. 유형은 다르지만 쉬지 않고 달려온 이들이 공히 꼽은 마라톤의 매력은 극한의 한계까지 달릴 때 느끼는 환희의 순간, 그 고양감이다. 전 교수는 “마치 내 자신이 사라지는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몰아(沒我)의 경지.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라고 불리는 이것은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고통이 날아가고 구름 위를 떠다니는 듯한 느낌을 말하는데, 일종의 환각증상과도 같다고 알려졌다. 박 교수는 한계치 이상에서 경험했던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장시간 뛰다 보면 사위가 고요해지고 의식을 명료하게 깨우는 순간이 있어요. 보통은 극한의 고통을 맛본 다음에 옵니다. 그때 비로소 진정한 내 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달까요? 제 경우는 스포츠 의학을 하러 영국에 가느나 마느냐를 두고 여러 가지 생각이 많을 때, 마라톤대회에 나갔던 경험이 있어요. 아스팔트 열기를 받으며 5시간 10분을 뛰었는데, 그걸 거기서 결정했어요. 꼭 그 생각을 하면서 뛰었던 건 아닌데도 어느 순간 툭툭 곁가지가 쳐지면서 한가지 생각만 남더라고요.” 박 교수는 그 길로 스포츠 의학을 더 공부하기로 결정짓고 영국행을 선택했다. 그는 이제 생각이 복잡할 때나 스트레스가 쌓였을 때 책상에 앉아 고민하는 대신 운동화를 고쳐 신는다. 그렇게 매일 아침 길 위를 달리며 인생의 많은 것을 배웠다. 승자와 패자가 없는 세계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말은 대체로 운동선수들에게 적용하곤하는 말인데, 그 중에서도 마라토너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이다. 극한의 한계까지 달리는 이들에게 레이스에서의 승부는 중요하지 않다. 우승을 목표로 뛰는 선수라면 다른 문제겠지만 일반적인 러너에게 누군가를 이기고 지는 일은 큰 문젯거리가 되지 않는다. “달리기에는 승패가 없습니다. 얼마가 걸리든 완주를 하면 러너들은 모두 승리자죠. 그래서 러너들은 다른 러너를 만나면 서로를 응원해줘요. 박훈기 교수님과 저도 그렇고요. 정말 멋진 스포츠 아닌가요?” 경쟁자는 오직 자기 자신. 멈추고 싶을 때 멈추면 그뿐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나를 뛰어넘기 위해 달리고 또 달린다. 그래서 러너는 자유롭고, 또한 고독하다. ‘인생은 마라톤’이라고 했다. 길고 때로는 고통에 몸부림 치기도 하며 인내한 자들에게만 찾아오는 달콤함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언젠간 끝이 난다는 점이 그러하다. 달리는 쾌감을 알아버린 러너들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조금씩 목표를 높여가는 성취감을, 자아 소멸의 해방감을 맛본 사람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완주에 성공한 이들의 입가에 번지는 하늘보다 맑은 미소에 그만 가슴이 설렌다. 러너스 하이(Runner’s high) 미국의 심리학자인 A. J. 맨델이 1979년 발표한 논문에서 처음 사용된 용어이다. 신체 및 정신적인 측면과 관련이 있으며, 주변의 환경 자극이 있는 상태에서 운동을 했을 때 나타나는 신체적인 스트레스로 인해 발생하는 행복감을 말한다. 이때의 느낌은 헤로인이나 모르핀 혹은 마리화나를 투약했을 때와 비슷하고 때로는 성적 절정감인 오르가즘에 비교되기도 한다. 마라톤 선수들은 주로 경기보다 훈련을 할 때, 극한의 고통을 넘어 35km 지점쯤 되면 러너스 하이를 경험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글. 백아름 / 사진. 한진우, 김성현
2013-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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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권하는 남자 - 김이석 한양대병원 정형외과 교수
그의 사전에 VIP는 없다. 특정한 누군가가 아니라 모든 환자들이 김이석 교수에게는 VIP란다. 병원 입장에서는 깜짝 선언이 아닐 수 없겠지만, 어쩐지 환자라면 나를 ‘매우 중요한 사람’으로 여겨줄 그에게 나의 ‘새 삶’을 맡기고 싶을 것이다. 20년째 한양대학교병원에 개근하고 있는 신입사원, 김이석 정형외과 교수를 만나본다. 한양대학교병원 김이석 정형외과교수 동안 의사의 고충 연구실에 앉아 있는 김이석 정형외과 교수를 보고는 일순 갸우뚱했다. 김 교수의 공간에 웬 의대생이 앉아 있나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남자, 자연스럽게 일어나 취재진을 맞으며 인터뷰를 앞둔 고양감을 수줍게 내비친다. 그가 바로 우리가 만나려던 김이석 교수가 맞았다. 흰 가운에 수놓인 이름 석자를 확인하고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의 모습에 대해, ‘교수님’의 나이에 대해 고정관념을 품고 있었음을.“머리를 하얗게 염색할까 심각하게 고민한 적도 있어요. 어떤 환자분은 저랑 진료실에서 만나 한참을 이야기 나누고 수술일정까지 잡았는데 나중에 글쎄, 교수를 만난 적이 없다는 거예요.(웃음)” 환자들로부터 “수술은 선생님이 하십니까?”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는다는 김이석 교수. 그는 석연치 않은 눈길을 거두지 못하는 취재진에게 익숙하다는 듯, 그리고 짐짓 유쾌하게 ‘동안 의사의 고충’을 말해주었다. “제가 고관절 분야를 맡고 있다 보니 환자들 대부분이 고령이시거든요. 그분들 연세에 ‘의사’는, 더구나 ‘교수’라고 하면 머리도 좀 희끗희끗하고 저보다 한참 연배가 높은 분을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렇게 어리게 보이는 의사가 교수입네 하고 나타나니까 걱정들이 좀 있으신 것 같더라고요.” 환자들의 새 삶을 짓는다 타고난 동안 덕에 환자들에게 존경보다 귀여움(?)을 받지만 우려는 고이 접어두어도 좋다. 김 교수는 고관절 질환에 관한 한 국내외에서 두루 인정받고 있는 의사다. 첫째도 둘째도 ‘환자의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그는, 수술도 수술이지만 수술 이후 환자가 퇴원할 때까지 살뜰히 살피는 자상한 의사로도 유명하다. “수술 받은 이후에 환자분의 경과가 좋지 않을 때 저는 가장 가슴이 아프고 안타까워요. 제가 맡고 있는 분야가 생명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한 개인의 삶의 질의 문제이기 때문에 환자가 웃으면서 퇴원하시는 모습을 봐야 의사가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해요.”그의 말처럼 뼈와 관절을 다루는 정형외과 질환은 일반적으로 생명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고관절이 골절되거나 고장 나면 여생을 누워 있어야 한다. 때문에 환자들의 삶의 질 문제에 보다 더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 환자들의 삶의 질에 관심을 기울이는 건 정형외과 의사로서의 의무이자 사명이라는 그의 말에 힘이 실렸다. “제가 수술한 환자 중 가장 연세가 많은 환자가 기억에 남네요. 고관절 골절로 오신 할머니신데 98세 정도 되셨어요. 수술하시고 저한테 다시 안 오셔서 혹시 돌아가신 게 아닌가 걱정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1년 뒤에 오셨어요. 이번에는 허리도 수술 해달라시며. (웃음)” 건강하게 거동하는 할머니를 뵈니 김 교수는 절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말이 98세지, 거의 모든 기관이 100년 가까이 기능을 한 것이다. 만약 그가 위험부담으로 수술을 하지 않았다면 이 고령 환자는 다시 걷지 못하고 세상을 등졌을지도 모른다. 나이가 몇이든, 그는 환자들에게 새 삶을 지어주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예, 저는 수술을 권합니다. 왜냐하면 그분들이 수술 받지 않고 가시는 길이 훤하거든요. 다른 부분의 골절과 달리 고관절 쪽의 골절은 환자가 거동을 할 수가 없어요. 본인이 거동 할 수 없으니 남의 손을 빌려야 하고 그건 결국 가족들이 짊어져야 하는 거 아니겠어요? 수술이 아무리 위험하다고 해도 결국 이 수술은 해봄직한 수술이고, 수술 하시는 게 환자와 환자 가족을 위하는 길이라고 믿어요.” 20년째 개근 하는 신입사원 93년 한양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한 이래, 군대 간 3년을 제외하고 한번도 이곳을 벗어난 적 없다는 김이석 교수는, 자신이 한양대학교병원의 ‘신입사원’이라는 생각으로 어떻게 하면 병원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그래서 그는 연구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새 길을 열고자 하는 열망은 곧 연구성과로 드러났다. 김 교수는 2009년에 이어 2011년에도 대한고관절학회 학술상을 수상했으며, 2012년에는 대한정형외과학회 학술상까지 받았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 학술상은 연구팀이 함께 이룬 결과라며 앞으로도 갈 길이 멀다고 손사래 쳤다. “인공관절 쪽 연구는 현재 많이 진행하고 있지만, 새로운 쪽을 개척하고 싶어요. 이를테면 고관절 내시경 분야라든가, 인공관절로 모든 것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환자가 자기 것으로 더 오래 쓸 수 있을까 하는 연구 말이죠. 조금 더 나아간다면 뼈의 재생에 대해서도 연구하고 싶고요. 또 제 환자들이 대부분 노령이라 골절 환자들이 많아요. 골다공증도 많고… 그 분야에 대해서 연구하는 것도 제 사명이지 않을까 합니다.” “제 모토는 그겁니다. 저에게 VIP는 없다는 것. 저에게 오는 모든 환자가 VIP입니다. 특정 환자를 VIP로 여기고 치료하지는 않을 생각이에요. 모든 환자들에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하는 것이 의사로서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내는 세상으로 통하는 문” 애 띤 얼굴과 달리 김이석 교수는 사실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과 19개월 된 늦둥이 딸을 가진 ‘아빠’다. 활발한 연구활동과 빼곡한 진료·수술 스케줄 덕에 이렇다 할 취미도 가져보지 못했지만, 김 교수는 가정에 소홀하지는 않은 양 보였다. 그에게 가족 이야기를 꺼내니 만면에 미소가 떠오른다. 특히 아내 이야기가 나오자 쑥스러운 듯 말을 아끼면서도 뜨거운(?) 애정을 과시했다. “서른 즈음에 지인의 소개로 처음 아내를 만났습니다. 장소는 기억에 없는데 어딘가 문 열고 들어가보니 광채가 비치는 아가씨가 앉아 있었어요. 얼마나 눈이 부시던지… 눈이 멀뻔했죠. 그렇게 아내에게 첫눈에 반했습니다. 그런데 이거, 분명히 제 아내도 보겠죠?(웃음)” 아내가 볼 것을 예상해 스물여덟에 만난 그이가 ‘죽어도 첫사랑’이라는 너스레에 좌중은 한바탕 대소했지만, 결혼한 지 8년이 지난 지금도 아내를 볼 때마다 설렌다고 말하는 그는 ‘이게 다 진실인가?’ 궁금증이 일게 할 만큼 진지했다. 그는 아내를 통해 더 큰 세상을 배운다고 했다. “아내는 미국 주정부 사무소에서 근무하고 있어요. 병원에서만 지내는 저보다는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많고, 훨씬 큰 세상을 경험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늘 이야깃거리가 끊이질 않죠. 아내에게 배우는 점이 참 많습니다. 제게는 아내가 세상으로 통하는 문이랄까요?” 한 여자를 깊이 사랑하고, 그이를 누구보다 존경하는 남편으로 살고 있는 김이석 교수. 연애시절부터 지금까지, 세월을 더듬는 그의 눈빛은 그 속에 쌓아둔 추억마저 고스란히 감촉하는 듯 했다.인터뷰 말미에 의사로서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하고 있는 그에게, 최종 목표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훌륭한 의사, 연구자, 아빠, 남편”이라고 심플하게 대답했다. 아무래도 그는 지금 이룬 꿈들을 보듬으며 위대해질 모양이다. 글. 백아름 사진. 김상민
2013-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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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과대학 들여다보기 -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장 박문일
“ 왼쪽 주머니에는의학 서적을,오른쪽에는 인문 서적을넣고 다니는멋진 의사가 되길” 현재의 한양대학교 의과대학이 있기까지 뜨거운 열정과 의지로 강한 추진력을 발휘한 박문일 학장이 있었다. 그리고 한양대학교 의과대학이 전국 최고의 의사국가고시 합격률을 기록하기까지 모교에 대한 그의 남다른 애정이 깃들여져 있었다. “나는 참 운이 좋은 학장이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전국 최고의 합격률이라는 것은 결국 잘 가르치고 성실히 잘 배웠다는 소리 아니겠습니까? 거기다 의과대학 본관에 170억 원을 들여 최고의 의학교육 환경을 만들었으니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어느 하나 부족하지 않으니 이보다 더 고맙고 다행스러운 경사는 없겠지요.” 의과대학 안팎으로 내실을 기하고 보니 이제는 의사 본연의 자리로 눈을 돌려야 할 때라고 박문일 학장은 말한다. 그래서 그가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것이 인문의학의 힘이다. “졸업식에서 항상 당부하는 것이 인문학 공부를 소홀히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는 21세기 의사의 경쟁력은 인문학으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차가운 머리로 병을 치료한다면, 가슴으로 환자를 치료해야지요. 요즘 시대는 병만 치료하는 의사를 양산하고 있어 정작 환자를 치료할 줄은 모릅니다. 그러니 환자가 아닌 병만 보는 의사가 되지 말라는 마음에서 왼쪽 포켓에는 의학 서적을, 오른쪽에는 인문 서적을 넣고 다니라고 말하죠. 그런 의사가 진정 멋진 의사가 아닐까요?” 박문일 학장이 모교발전기금으로 1억 원을 기부한 이유 또한 인문의학 강의를 위한 예산 마련을 위해서인데, 그 속에는 자신이 솔선수범하는 계기를 통해 기부문화가 확산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져 있다. 만약 그의 마음이 닿는다면, 지금 의대 본관 6층에 가면 볼 수 있는 ‘Room4U’, ‘9Space’ 등의 기부자의 마음을 담은 헌정 팻말이 하나 둘 늘어나는 모습을 가급적 더 짧은 기간에 볼 수 있을 지도 모를 일. “어느 의사가 여든 나이에 은퇴하면서 인체에서 가장 먼 길이가 머리에서 심장인 것을 처음 알았다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80살이 되도록 환자를 머리로만 봤었고, 은퇴를 앞둔 지금에서야 심장으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말이죠. 그 의사가 이를 깨닫기까지 50년이 넘는 세월이 걸렸지만, 사랑하는 우리 학생들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제자 혹은 후배들은 ‘만시지탄의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하는 스승이자 선배의 배려, 박문일 학장이 인문의학의 힘을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는 않을까. 박문일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장
2013-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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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칵’ 추억을 포착하다 - 송순영 교수
누군가 “만일 글이 없었다면 시인은 사진작가가 되었을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 그만큼 어떤 사진은 글보다 더 큰 감동을 주며, 시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기도 한다. 사진을 찍는 이가 잡아내는 찰나의 순간은 찰칵대는 셔터 소리만큼 아름답고 자유롭다. 이런 사진의 매력을 일찍 알아버린 송순영 교수는 마음이 동할 때 어디로든 카메라를 둘러매고 향한다. 혼자만 간직하고 싶은 추억을 담고 싶어서 말이다. 카메라는 가장 재미있는 장난감 송순영 교수가 사진을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캐나다 학회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였다. 창가에 앉아 있는 그에게 자리를 바꿔달라는 요청을 했던 동료는 창 밖 풍경을 열심히 찍더니 슬쩍 내밀었다. ‘멋있다’라는 생각이 든 동시에 ‘하고 싶다’라는 마음이 스쳤다. 그렇게 돌아와 누구에게 묻지도 않고, 익숙한 브랜드여서 믿음이 갔던 SONY DSLR 카메라를 입문용으로 구입했다. 때는 2007년 봄, 렌즈교환식 디지털카메라인 DSLR 열풍이 불고 있었다. 처음 6개월은 혼자 낑낑대며 찍어봤죠. 하지만 초보가 독학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친구가 활동하던 동호회에 가입했죠.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빼앗겼지만, 재미있었죠. 아이들이 재미있는 장난감을 갖게 되면 푹 빠져 놀 듯 저에게는 카메라가 장난감이었어요. 영상의학과 교수인 그는 사진을 보고, 판독하는 게 일이다. 때론 주변에서 맨날 사진을 보는데 지겹지도 않느냐고 묻곤 한다. 하지만 그는 웃으며 말한다. “사진은 내 마음 가는 대로 좋아하는 것들을 찍고 무엇보다 판독하지 않아도 되는 아주 재미있는 놀이죠.” 열정으로 만들어 내는 ‘결정적 순간’ 카메라를 사면 1년 동안 보통 1만 컷의 사진을 찍기도 어렵다. 찍고 지울 수 있는 디지털카메라이기에 셔터를 누르는 망설임이 없는데도 말이다. 그는 카메라를 구입한 첫해, 5만 컷이나 찍었다고 한다. 얼마나 많은 곳을 다니고, 찍었을지 상상만해도 놀랍다. 풍경사진을 주로 찍는 그는, 날씨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하늘이 파랗고, 맑은 날이면 사진의 색감이 좋을 수밖에 없는 법. 더군다나 모처럼 쉬는 날이라면 집에 있을 수 없는 날이다.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 일기예보를 꼭 챙기는 버릇, 하늘을 쳐다보게 되는 버릇이 생겼어요. 이른 새벽, 하늘에 파란 기운이 보이면 어김없이 차를 몰고 나가죠. 일출을 찍기 위해 일산인 집에서 가까운 영종도, 강화도는 물론 새벽 4시에 북한산에 오를 때도 있어요. 한 때는 야경에 빠져서 한강 다리로 퇴근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해가 떨어진 직후의 야경이 진짜 아름답거든요. 하늘의 파란 기운과 반짝이는 불빛이 만나는 그 타이밍을 맞추려고, 아침부터 틈만 나면 하늘을 올려다보고 좋은 때가 오기만을 기다렸죠. 북한산 정상에서 운해를 찍고 싶어 새벽 4시에 랜턴을 들고 등산길에 오른 게 10번이 넘고, 안개 낀 두물머리에 볕이 드는 모습을 찍고 싶어 양평을 거쳐 병원으로 출근하던 날도 있었다. 동해에 일출을 찍으려고 퇴근하고 나섰다가 잠시 눈 붙인 휴게소에서 해 뜨는 것을 보기도 했다. 남들이 볼 때는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어도, 그에겐 결정적인 순간을 찍기 위한 여정일 뿐이다. 사진은 나에게 기억의 저장소 지금 애용하는 카메라는 4년 전 새로 구입한 SONY A900. 그와 함께 곳곳을 누비며, 아름다운 풍경사진을 많이 담아냈다. 사진을 찍기 시작한 이듬해인 2008년부터 블로그(happysnapper.tistory.com)의 문을 열고 차곡차곡 아름다운 기록을 남기고 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그냥 멋진 사진 한 장이라도 그에게는 추억이며, 기억이 저장된 순간이다. “사진 한 장만 봐도 그때의 날씨, 상황, 감정들이 떠올라요. 사진 속에 숨겨진 모든 순간이 다 내 것이 되었다는 기분 좋은 느낌, 그렇게 추억을 쌓아간다는 생각이 들죠. 산정상에서 찍은 해 뜨는 사진 한 장에는 내가 오르던 산길, 맑은 공기, 상쾌했던 기분 모든 게 담겨 있죠. 갯벌에서 찍은 어떤 사진에는 딱딱한 줄 알고 터벅터벅 들어갔다 푹 빠져버려 당황했던 추억이 담겨 있고요.” 송순영 교수에게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래킹을 하며 풍경 사진을 찍고 싶은 꿈이 있다. 히말라야에 별이 쏟아지는 밤, 파인더를 통해 보는 또 다른 세계는 언젠가 그만의 사진이 될 것이다. 반짝이는 별을 보며 꿈꾸는 소년처럼, 그에게는 해와 달, 별도 산도 언제나 추억하고 싶은 순간이다. 그 순간을 추억으로 만들기 위해, 어제를 기억하고 오늘을 가슴 뛰게 하는 사진을 찍기 위해, 앞으로도 송순영 교수의 카메라 셔터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글. 전진 사진. 정준택
2013-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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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 한 장 역사를 지어 올린 노교수의 전언 - 이하백 교수
이하백 교수는 마지막까지 한양대학교의료원의 정신인 ‘사랑의 실천’을 당부했다. 황무지에서 출발해 삶과 사랑을 일궈냈던 시절로 이어지는 이하백 교수의 이야기 속에서 ‘끝’은 마침표가 아니라 도돌이표다. 이것은 한양대학교의료원의 역사를 지어 올리고 평생을 헌신한 한 원로교수의 전언이다. 이하백 교수가 한양대학교병원 생활을 마친지 꼭 한 달이 되어갈 무렵이다. 그가 길 건너에서 취재진과 눈인사를 나누고도 한참을 이쪽으로 걸어오지 못한 건, 한 발짝 떼기가 무섭게 익숙한 손길로 인사를 청하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세월의 위력이란 그런 것이다. 이 노교수가 지나는 모든 사람들을 정확하게 호명하는가 싶더니, 덧붙여 “아, 그 논문 말일세”, “둘째가 꽤 자랐겠구먼”, “자네가 천주교 신자였었지?”하며 내밀한 이야기들을 주고 받을 수 있게 하는, 모종의 힘 같은 것. 40년 세월과의 이별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1회 졸업생으로 의과대학 학장을 지냈으며 40여 년간 한 번도 이곳을 떠나 본 적 없는 사람. 그런 그가 지난 2월 정년퇴임을 맞았다. 조심스럽게 긴 여정을 마친 소회를 물었다. “아쉬움이 많죠. 하고 싶었던 일들을 다 못한 책임감도 있고, 조금이라도 더 열심히 해서 학교나 의료원의 발전에 기여했더라면 하는 후회도 있고…. 또 우리 학생들이 나와서 잘하고 있지만 그래도 거기에 대한 가이드나 그런걸 더 잘 해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는 거죠.” ‘시원 섭섭’까지는 아니더라도 조금 더 개운한 답을 예상했는데 어쩐지 회한이 더 큰 모양이다. 그러나 미련만 남은 것은 아니다. “물론 보람도 있습니다. 잘 활동하고 있는 제자들이나 후배들을 보는 것이 더 없는 보람이죠. 우리 학교가 이만큼 발전하고 또 여러분들이 애써서 이룩한 것에 대해서는 긍지도 있습니다. 우리 대학이 추구하는, ‘세계 100대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고 생각하면 그것 또한 보람이고요.” 요즘 그는 봉사활동으로 재능기부를 하고 있다고 했다. 앞으로도 무료진료와 강연을 통해 꾸준히 이어갈 계획이라는 이야기에, 문득 퇴임을 하면서 발전기금으로 1,000만 원을 기부한 사실을 언급했더니 “특별할 게 없는 일”이라며 부드럽게 밀쳐냈다. “그건 우리 학교와 의료원의 발전을 위한다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입니다. 동문들도 그렇게 하고 있고,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한 거죠. 특별한 일이 아니니 따로 언급할 내용은 아닌 것 같아요.” 이 교수는 이야기 도중에도 아이를 안고 온 부모가 멀리서 목례를 하면, 얼른 다가가 안부를 묻고 꼬마환자의 작은 손을 잡은 채 놓을 줄 몰랐다. 이곳에서 보낸 세월만큼 소중한 환자도 늘어갔을 것이다. 그는 재직시절 환자를 스승처럼 여겼다고 했다.“의사에게 가장 좋은 선생님은 환자에요. 항상 환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손톱 만한 것도 놓치지 않아야 하죠. 치료에 차도가 없을 때는 포기하지 말고, 끊임없이 공부하면서 문을 찾아야 합니다.” 마지막까지, “사랑을 실천하라” 그의 입에서 ‘마지막’이라는 말이 흘러나오는 순간 흠칫 놀라고 말았다. 이하백 교수에게 건넨 그 말은 사실 ‘마지막 질문’이란 뜻이었는데, 이제 막 정년퇴임식을 치른 그에게는 아무래도 ‘마지막 기회’의 그것으로 들렸던 것 같다. 그는 목이 메인 듯 잠시 침묵했다가 이내 소리를 가다듬고 다시 말을 잇곤 했다.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제자들과 의료원 후배들에게 전한 노교수의 진심 어린 충언은 좌중의 마음을 적셨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한양대학교의료원은 그냥 우연하게 생긴 병원이 아닙니다. 영리를 목적으로 한 의료기관도 아니고요. 그게 참 귀한 소명이에요. 개원 초기, 그러니까 의료보험도 없을 때 우리는 전체 환자의 10%가 넘는 환자들을 무료로 진료했습니다. ‘이 환자는 도와줘야 한다’ 그러면 아무 조건 없이 돌보는 곳이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윤’이나 ‘대학의 명성’ 그런 것보다 우리는 사회 환원적인 측면에서, 또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잊지 마세요. 그 이야기는 꼭 좀 적어줬으면 좋겠네요.”
2013-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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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 그 아름다운 번거로움. 최윤일 한양대학교병원 의료정보팀 과장
“캠핑의 참맛은 겨울에 느낄 수 있어요” 발을 동동 구르게 하는 한파도 이 남자의 캠핑사랑을 말릴 순 없었나 보다. 1월의 가평은 아직 눈이 채 녹지 않았고, 몹시 추웠다. 최윤일 과장은 온유한 바람처럼 텐트를 흔들며 나왔다. 반색하는 그에게 “춥지 않으세요?”라고 인사를 건네니, 허허로이 웃는다. 따라 들어간 텐트 안은 거짓말처럼 온기가 훅 끼쳤다. 주섬주섬 자리를 마련해주고도 한참 동안 텐트 안 여기저기 손을 거두지 못하는 최윤일 과장. 그는 캠핑하면 여름캠핑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지만, 캠핑의 진정한 매력은 겨울에 있다고 단언한다. “캠핑의 참맛은 겨울에 느낄 수 있습니다. 모닥불에 모여 앉아 불도 쬐고, 뜨끈한 어묵탕도 끓여 호호 불어먹고요. 혹한 속에서 두 아들과 부둥켜안고 침낭 속에서 덜덜 떨다가 아침에 텐트 문을 열고 나오면, 눈앞에 순백의 설원이 펼쳐져 있어요. 정말 눈부시게 아름다운 풍경이죠.” 설경을 그리듯 아련하게 말하는 최 과장의 눈빛에서 캠핑에 대한 그의 무한 애정을 읽을 수 있었다. 바람처럼 유랑하던 백패커, ‘오토캠퍼’ 되다 최윤일 과장의 캠핑사랑은 유구하다. 청년 시절부터 친구들과 배낭을 메고 오지로 여행 다녔다는 그의 말에 따르면, 캠핑 역사만 25년이 넘은 셈이다. 봇짐 하나 지고 팔도를 유랑하던 백패커는 이제 중년의 ‘오토캠퍼’가 되었다. 이유는 한 가지, 그가 두 아들을 둔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주말이면 동료들과 술을 마시거나, 가끔 골프를 치는 게 전부였어요. 가족과 함께할 시간이 없었죠. 그러던 어느 날 퇴근하고 돌아왔는데, 아이들이 갑자기 훌쩍 커버린 느낌이 드는 거예요. 그 순간 ‘아이들과의 시간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짐을 쌌다 풀었다, 이고 지고 다니는 여행이 번거롭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꿀맛 같은 캠핑장의 밥과 쏟아지는 밤하늘의 별, 맘껏 뛰어 놀 자연을 아이들에게 선물하고 싶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아이들의 반응이었다. 캠핑장에서 보내는 날이면 아침 일찍 일어나 숲 속 정찰을 마치고, 지천에 놀 거리가 그득하다는 표정으로 들떴던 두 아들. 나무를 타고, 흙을 만지며 건강하게 웃는 아이들의 모습은 다음 캠핑을 서두르게 만들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10년 동안 꼬박 다녀 그렇게 다시 길 위의 여행자로 나선지도 10년여. 지금까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가리지 않고 다녀온 캠핑 횟수가 어림잡아도 200회가 훌쩍 넘는다. 한 달에 2회 이상은 빠지지 않고 다닌 것. 그는 캠핑의 장점으로 망설임 없이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가족과 더 많은 대화를 할 수 있는 점’을 꼽았다. 오토캠핑을 하면서 무엇보다 자녀와 대화가 많아졌다고. “사실 아버지가 집에서 하는 말이라곤 ‘다녀왔니, 밥은 먹었니’ 정도잖아요? 하지만 캠핑장에선 어둠이 내린 숲 속에서 장작불을 밝혀놓고 둘러앉아 그동안 못다 했던 이야기들을 밤새도록 할 수 있어요. 이런 시간을 통해 자연스럽게 일상의 스트레스가 풀리는 걸 보면, 가족이 얼마나 힘이 되고 소중한지 느낄 수 있죠.” 그렇게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자란 아이들이 어느덧 21살, 18살이 되었다. 이제 아버지보다 텐트도 더 잘 치고, 척척 짐도 짊어지는 두 아들을 보면 최 과장은 마음까지 든든해진다. 초록이 기지개를 켜는 이즈음은 캠핑족들에게 황금기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캠퍼들이 너도나도 나서기 때문에 캠핑장은 미어터질 것이 분명하지만, 최윤일 과장은 더욱 부지런히 일상을 쪼개어 자연의 품으로 찾아갈 것이다. “안개 낀 숲 속에서 눈을 뜨고, 쏟아지는 밤하늘의 별을 가족과 함께 보세요. 손잡고 캠핑장 주변도 걸어보시고요. 캠핑의 번거로움 따위는 깨끗이 지워줄,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추억이 됩니다.” 최윤일 과장이 추천하는 오토캠핑장 BEST 3 노을캠핑장 : 노을공원 내에 있는 캠핑장으로 부지가 넓고 잔디로 조성되어있다. (서울시 마포구 성산동 390-1, 02-300-5571) 바다캠프장 : 오산 해수욕장 근처에 있어 바다 캠핑족에게 인기가 높다. (강원 양양군 손양면 송전리 21-19, 033-672-3386) 양양캠핑장 : 남대천이 있어 낚시와 물놀이를 할 수 있다. (강원도 양양군 양양읍 월리 371-5, 033-671-9955) 글. 편집실 / 사진. 이정민
2013-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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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이창화 신장내과 교수
너무나 진지한 모습에 ‘역시 의사선생님이시구나’하려니 다음 순간 솔직한 속내를 드러낸다. 카메라를 앞에 두고도 환자들과 대화 나누는 일에 더 몰두하는 이창화 교수. 그 순간을 그대로 담으려니 “신장내과 홍보가 잘 되어야 한다”며 열심히 포즈를 취한다. 그런 그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자연스레 머릿속을 채운 단어는 ‘인간적인’이었다. 그를 움직이는 ‘관계의 힘’ “멋지게 말하자면 할 수도 있겠지만, 그냥 솔직한 게 좋겠어요. 원래 꿈은 과학자였습니다. 재수시절, 주변에 의대를 목표로 공부하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괜찮아 보이더군요. 힘들지만 보람도 있을 것 같고, 좋은 친구들과 함께 공부를 하는 재미도 있을 것 같고.” 어릴 적부터 의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거나 사명감 때문이라고 답했다면 오히려 싱거웠을 텐데, 의외의 대답에 저절로 질문이 이어졌다. 어렵기로 소문난 의대 공부를 특별한 각오 없이 어떻게 이겨냈느냐고. “처음에는 많이 놀랐습니다. ‘캠퍼스의 낭만’을 조금쯤은 누릴 수 있을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막상 공부를 하다 보니 ‘힘들다’는 생각을 할 시간조차 없었어요. 그저 옆에 있는 친구들도 묵묵히 그 과정을 이겨내고 있으니까 저도 못 할 것은 없다고 생각했을 뿐이죠.” 천재가 아닌 이상 쉽지 않은 일에 흥미를 느끼고 난관을 극복하려면 곁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 그래서 이창화 교수는 학생들에게도 동료들과 부대끼며 나누는 과정의 소중함을 돌아볼 것을 권한다. 의대생의 통과의례로 여겨지는 ‘해부학 교실’을 거치며 비로소 의사로 거듭났다는 그는 오늘에 이르기까지모든 과정이 관계의 힘이었음을 강조한다. 그렇게 늘 혼자 도드라져 보이기 보다는 기본과 관계에 충실한 학생이었던 탓일까. 전공 과목을 선택함에 있어서도 그는 성향을 그대로 이어갔다. “의학 공부를 하면서 내과에 강하게 끌렸습니다. 다만 요즘은 내과도 해부학과 수술에 기반한 과가 많아지고 있으니 고민이 많았죠. 그래서 내과 고유의 색깔을 가진 내분비대사내과와 신장내과를 두고 고민을 하다가 결국 신장내과를 선택했어요. 내분비대사내과는 너무 어려울 것 같았거든요.” 사람의 마음을 두드리는 ‘한결같음’ 내분비대사내과가 어려울 것 같아서 신장내과를 택했다는 알쏭달쏭한 말을 던져 두고 사람 좋은 미소를 건네는 그와 마주하고 있으려니 이창화 교수에게라면 의사에게 환자란 어떤 의미인지 솔직한 대답을 들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생겼다. 환자의 기대와 자신의 ‘일’ 사이의 간극을 그는 어떻게 극복하고 있을까 궁금해졌던 것이다. “신장내과의 특성상 한 환자와 인연을 맺으면 오래 두고 만날 수 밖에 없습니다. 1년에 4차례 남짓 혈액투석을 하시는 환자분의 경우, 10년이면 적어도 40번을 만나게 되잖아요. 그 과정에서 환자분의 세세한 어려움을 듣게 되니 그저 ‘일’로 만나는 사람일 수가 없죠. 인간적으로 공유하는 부분도 커지거든요.” 결국 다시 ‘관계’의 문제로 돌아온 셈. 그를 찾아오는 환자 대부분이 식습관부터 생활습관까지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경우이다 보니, 일을 잘 하고 싶다는 관점에서 봐도 사무적으로만은 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창화 교수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무서운 선생님’은 될 수 없다 말한다. “친절한 편이라고는 감히 말 못하겠지만, 저는 환자분께 주로 부탁을 하는 편이에요. ‘이렇게 하시는 게 어떻겠어요?’라며 차근차근 이유를 설명을 해드리면 스스로 납득을 하시게 되니 장기적으로는 더 도움이 되더라고요.” 이런 그에게도 가슴 아픈 순간은 찾아오게 마련이다. 최근에는 주기적으로 혈액투석을 받는 환자와 대화를 나누다 망연해진 기억이 있다. 당뇨부터 신장질환까지 합병증으로 고생하던 환자가 그에게 “선생님, 제 혈관이 점점 막혀가면서 저는 죽어가겠죠?”라는 말을 건넸던 것. 오랜 시간 만나 왔던 환자가 스스로 죽어가고 있다는 인식을 하며 살고 있다는 사실에 이창화 교수는 자신도 모르게 “왜 그런 생각을 하세요…”라며 눈을 피했다. 다음 순간에야 그를 다독이며 호전시킬 수 있는 방안들을 설명했지만, 그런 날이면 이창화 교수는 의사로서의 사명과 책임의 무게를 새삼 깨닫는다. 반면 중환자실에 입원을 했다가 기분 좋게 퇴원하는 환자를 대하는 날이면,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지고 얼굴에는 희미한 미소가 떠오른다. “신장내과의 특성상 한 환자와 인연을 맺으면 오래 두고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1년에 4차례 남짓 혈액투석을 하시는 환자분의 경우, 10년이면 적어도 40번을 만나게 되잖아요. 그 과정에서 환자분의 세세한 어려움을 듣게 되니 그저 ‘일’로 만나는 사람일 수가 없죠. 인간적으로 공유하는 부분도 커지거든요.” 자부심과 안타까움 사이, 인간적인 의사 의학에 발을 들이던 시절부터 오늘날까지, 이창화 교수를 끌어온 또 다른 한 축은 한양대학교병원 신장내과와 인공신장실에 대한 자부심이다. 국내에서 두 번째로 문을 연 한양대학교병원 인공신장실은 우리나라 인공신장실의 산 증인이기 때문. “지금은 학교를 떠나셨지만 제 평생의 스승이신 박찬현 교수님부터 현재 이곳에 있는 동료와 선후배들까지, 우리 병원 신장내과에는 좋은 의사선생님들이 많이 계십니다. 하지만 대형병원들은 물론 무료 투석실이 많아지면서 과거의 명성은 퇴색된 것이 사실이죠. 이 부분은 개인적인 아쉬움으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 환자분들의 건강을 생각해도 참 걱정스러운 일입니다.” 무료 투석실을 찾았다가 건강이 나빠져 대학병원을 찾는 환자들을 볼 때면 이창화 교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안타까움을 느낀다. 배 이상의 치료비와 시간을 들이고서도 상태가 나아지면 다시 무료 투석실을 찾았다가 다시 대학병원으로 돌아오는 환자가 허다한 것. “무료 투석실이 많아지면서 전국적으로는 신장내과를 선택하는 의사의 수도 줄어들고 있습니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신장내과 의사로서 성취할 수 있는 부분이 줄어들었고, 좀 더 솔직히 말해 전망이 안 좋아졌기 때문이죠. 똑똑한 친구들이 신장내과를 택했다가 힘든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보면서 한 사람으로서 책임감을 느낍니다. 그들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더 나은 길을 제시해주고 싶어요.” 한양대학교병원 인공신장실 실장으로서 20여 년 가까이 이뤄낸 성취를 뒤로 하고, 앞으로 자신이 만들어나가야 할 길에 대해 더 크게 고민하는 이창화 교수. 그를 만나고서야 평범한 우리가 바라는 ‘의사선생님’은 전지전능한 능력을 발휘하는 이가 아니라 환자들의 일상에 눈을 맞추고 귀를 기울이며 해법을 찾아가는 ‘인간적인’ 의사선생님임을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글. 최명숙 / 사진. 김상민
2013-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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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맞추어 거닐며 세상의 빛을 공유하다 - 아동산회(아름다운 동행 산악회)
8년 전 한양대학교병원 성형외과 안희창 교수를 위시로 결성된 ‘아동산회(아름다운 동행 산악회)’는 매달 셋째 주 토요일이면 특별한 외출에 나선다. 하상복지관(서울 강남구 개포동 소재) 시각장애인들과 함께하는 산행을 통해 색다른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까닭. 가을향이 절정에 달한 10월, 혼자가 아닌 여럿이라 더없이 행복하다는 그들을 만나고 돌아왔다. 맞잡은 두 손 사이, 행복 차곡차곡 어느덧 제87차 정기 나들이를 갖게 된 아동산회. 오늘은 휴양지로 인기 좋은 경기도 포천의 명성산 일대를 가볍게 둘러볼 예정이다. 명동성당 자원봉사자들을 비롯해 한양대학교의료원 임직원들이 대거 참여한 덕일까, 안희창 교수의 입가에 미소가 가득하다. 드디어 ‘아름다운’ 팀 하상복지관 시각장애인들과 ‘동행’ 팀 비장애인들이 일대일 짝을 이뤄 탄생한 50개조가 가지런히 열을 맞춰 움직이기 시작한다. 처음 도착한 곳은 인근 산정호수. 각종 주의사항부터 정경 묘사에 이르기까지, 해당 장소에 대한 모든 정보가 파트너 왼편에 선 동행 팀원들로 하여금 상세히 전달된다. ‘곧 오르막길입니다. 앞에 야트막한 돌부리가 있으니 조심하세요!’, ‘물결이 잔잔하게 일렁이고 있어요!’, ‘잠자리 두어 마리가 날아다니네요!’, ‘주변으로 알록달록 색을 입은 낙엽들이 흩날리고 있어요’, ‘호숫가로 오리배가 한가로이 떠다니고 있네요’, ‘코스모스가 양쪽으로 흐드러지게 피어 있어요’. 파트너의 목소리에 가만히 귀 기울이는 찰나, 아름다운 팀원들 시야로 갖가지 소재들이 하나의 깜짝 이벤트처럼 등장한다. 어둠을 가르고 마주한 찬란한 세계다. “아름다운 팀원들이 사시사철 변하는 풍광과 묘미를 간접적으로나마 여실히 체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적이지요. 하지만 이 과정에서 동행 팀원들이 받게 되는 선물이 더 큽니다. 벅차오르는 감동과 잊지 못할 추억, 주어진 여건에 감사하는 방법 등 형용할 수 없으리만치 경이롭답니다.” 안희창 교수의 투철한 사회공헌 정신에 감탄해 작년부터 아동산회 일원으로 활동하게 되었다는 박미라 간호과장(인공신장실)은 이렇게 덧붙인다. 10살에 세균성 뇌막염을 앓아 시력을 잃은 여성 파트너를 바라보는 박미라 간호과장의 눈빛에 깊은 애정이 뚝뚝 묻어난다. 다리도 불편한데 시종일관 표정이 너무 밝아 ‘힘들지 않느냐?’ 물었더니, 제 파트너가 ‘평생을 누워 천장만 쳐다봐야 하는 전신불수 환자들에 비하면 나는 복 받은 사람’이라고 대답하더라고요. 매번 배워가는 것이 정말 많습니다. 나눌 수 있는 우리가 선택받은 존재 일각에서는 억새꽃 축제가 한창이다. 북적이는 인파에 아름다운 팀원들이 행여 놀라지는 않을까 걱정한 안희창 교수가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간다. 억새풀로 장식된 터널을 지나고 있습니다. 소원을 빌면 성취된다는 속설 때문인지,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이내 파트너에게 억새 한 줄을 뽑아 건네는 안희창 교수. 동년배로 보이는 남성 파트너의 얼굴이 금세 아이처럼 환해진다. 안희창 교수의 권유로 아동산회에 가입해 처음 현장에 나와 봤다는 이재현 학생(한양대학교 의과대학 본과 4학년)도 새로운 경험에 만감이 교차하는 눈치다. 바람 쐬러 간다는 생각에 며칠씩 설레어 옷이며 화장에도 잔뜩 신경 쓰게 된다는 아름다운 팀 어머님들을 보면, 타인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마음은 누구나 똑같구나 싶어 더 칭찬해드리고 있습니다. 우매하게도 앞을 볼 수 없으면 당연히 치장에 소홀하지 않을까 생각한 적이 있거든요. 박미라 간호과장도 얼마 전 범한 실수를 조심스럽게 공개한다. "구름 한 점 없이 푸른 하늘 아래 붉은빛 꽃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고 이야기하는데, 별안간 제 파트너가 난감한 기색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거예요. 출생 이래 단 한 순간도 무엇인가를 본 적 없는 선천성 녹내장 환자더군요. 충격이었어요. 그동안 얼마나 상대에 대한 배려 없이 단편적 사고로 살아왔는지를……." 산책 도중 쉼터에 모여 앉아 준비한 간식과 담소를 나누는 아동산회. 이제는 오히려 아름다운 팀원들이 동행 팀원들을 먼저 챙긴다. ‘더불어 사는 멋과 가치’를 몸소 정의해 보이는 아동산회야말로 진실한 삶을 여는 진정한 동반자다. ( 글. 이소영·사진. 펀 스튜디오 )
2013-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