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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 실명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다
최근 소아 실명의 30%는 의료진의 적절한 개입으로 예방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화제다.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환자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는 임한웅 교수를 만났다. 평상복 차림으로 병원 로비를 가로질러 오는 그의 첫인상은 전형적인 의사의 모습과는 달랐다. 특히 어딘가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특유의 미소는 경직되어 있지 않은 평소 태도를 보여주는 듯했다. 실제로 그는 한양대학교병원 안과 환자들에게 친근한 의사로 소문이 자자하다. “주변에서 ‘의사 같지 않다’고들 많이 해요.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는데요, 아마도 매사에 편안한 태도를 유지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제 성격 자체가 웬만한 일에 대해서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일단 받아들이는 편이거든요.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에 따라오는 업무의 과중함을 생각하기보다는 차근차근 해결해 나갈 길을 찾는 거죠.” 20살 이후 그의 삶은 줄곧 이곳, 왕십리에서 그려졌다. 20년이 훌쩍 넘는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처음 이곳에 발을 들이게 된 계기를 묻는 질문에 잠시 간의 침묵이 흘렀다. “제가 98학번으로 한양대학교 의과대학에 들어왔으니 정말 오래전의 이야기네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두 개의 선택지 앞에 놓였어요. 한양대 의대와 타 대학 공대 중에 택일해야 하는 상황이었죠. 솔직하게 저는 공대를 가고 싶었어요. 손으로 뭘 만드는 걸 좋아했거든요. 그런데 공대를 나온 아버지는 저에게 의대를 권하시더라고요. 아이러니 하죠(웃음). 결국 아버지의 설득에 의대를 선택하게 되었고 이후 계속해서 의사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의료기기 개발을 통한 미래 의료 실현 안과에서 사시란 한쪽 눈은 보고자 하는 대상을 똑바로 쳐다보지만, 다른 눈은 그렇지 못해 두 눈이 다른 곳을 바라보는 경우를 말한다. 우리 눈은 생후 6개월 경이 되면 눈의 움직임을 조절하는 근육이 완성되는데 6개월 이후에도 아이의 시선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소아 사시를 의심해 봐야 한다. 한쪽 눈이 바깥으로 빠지면 외사시, 안쪽으로 몰리는 것을 내사시, 위로 가면 상사시, 아래로 가면 하사시로 분류한다. 대부분 눈 주변 근육의 문제로 발생하지만 이에 대한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꾸준히 소아 사시 분야의 연구를 이어온 임한웅 교수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소아안과 전문의다. 오랜 시간 환자를 치료하면서 의사의 역할에 충실해온 그였지만, 기계에 대한 연구를 완전히 내려놓은 것은 아니다. 그는 뼛속 깊이 새겨진 공학도 기질을 십분 발휘해 사시를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의료기기를 개발 중이다. 그동안 의사의 경험을 기반으로 한 주관적 판단에 의해 진단되어 왔던 사시를 객관적인 수치를 이용해 진단할 수 있게 되는 것. 아직 개발 단계이기는 하지만 상용화를 앞두고 막바지 작업에 힘을 쏟고 있다고. “환자 안구의 움직임을 촬영한 영상을 분석해 정확한 사시각을 도출해 주는 기계에요. 2014년부터 연구를 시작했고 임상에 적용, 개발하면서 3~4년 전에는 본격 상용화를 위해 창업까지 했습니다. 이 기기를 통해 과잉 진료를 막고 더욱 정교한 수술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될 겁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시신경염 검사를 더욱 정확히 할 수 있는 기기도 개발하고 있다. 시신경 염증에 대한 검사는 MRI 촬영이 유일한 방법인데 촬영한 사진에서 염증으로 추정되는 부분을 의료진이 보고 염증의 심한 정도를 판단하는 방식이다. 그는 촬영 방식을 바꾸어 염증의 심한 정도를 정량적인 수치로 나타낼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개발 중이다. “사실 제 마음속에 개발하고 싶은 의료기기는 수없이 많지만 임상에서 꼭 필요하겠다 생각되는 것부터 중점적으로 개발하고 있습니다. 크게는 위의 두 가지 연구들이 실질적인 성과를 얻으며 상용화에 가까워지고 있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의료기기를 개발해 환자들에게 정확한 진단과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겠습니다. 더불어 우리 병원은 젊은 의사과학자 양성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더 많은 후배 의사들이 미래 의료 기술 개발에 관심을 가지고 의사과학자로 발돋움하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의 세상에 빛을 선사하다 얼마 전 해외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임한웅 교수는 ‘소아 실명의 원인’에 대한 주제로 연구 결과를 발표해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임 교수의 발표 전까지 소아 실명 원인에 대한 연구는 2012년 미국의 맹인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것이 전부였다. 해당 연구에서 소아 사시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 것이 ‘뇌 손상으로 인한 실명’이었고, 미숙아망막병증으로 인한 경우는 18%에 불과했다. 하지만 실제 미국 안과 병원에 내원한 1,000여 명의 진단 코드와 시력 결과 데이터를 모아 분석한 임 교수의 연구에서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소아 실명의 가장 큰 원인이 ‘미숙아망막병증으로 인한 실명’으로 나타난 것이다. 뇌 손상으로 인한 실명의 경우 의료진의 개입이 한정적이지만, 미숙아망막병증은 안과 의사의 적절한 개입으로 실명을 막을 수도 있다. 그의 연구결과는 의료진의 개입이 소아 실명을 방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면서 미국 의료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는 “이번 연구 결과를 통해 미숙아망막병증에 대한 안과 의사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적절한 예방조치를 통해 더 많은 아이들이 실명이라는 극단의 상황을 피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라며 연구 결과가 실질적인 실명 예방 조치로 이어지기 바라는 마음을 내보였다. 원인이 어떻든 간에, 병원에서 소아 실명 환자를 볼 때면 착잡한 마음부터 든다는 그. 진료실과 연구실을 오가는 그의 분주한 발걸음은 결국 환자의 쾌유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의사로 일하다 보면 아픈 환자와 보호자를 대신해 의학적 판단을 내려야 할 때가 있어요. 저는 선택의 기로에 놓일 때마다 ‘앞에 있는 환자가 내 가족이라면 어떻게 할까’ 생각합니다. 아이들에게 세상의 밝은 빛을 잃지 않게 하기 위해 우리 안과 의료진들이 해야 할 일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앞으로도 꾸준한 연구를 통해 새로운 의료기기를 개발하고 성실한 자세로 진료에 임하며 더 많은 환자들의 눈을 지켜내겠습니다.” [안과 임한웅 교수 바로가기]
2022-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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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위에 세운 행복한 가정 - 한양대학교병원 외과 하태경 교수님께 보내는 편지
한양대학교병원 외과 하태경 교수님께 보내는 편지 건강한 몸은 행복한 가정의 필수 조건이다. 조선경 환자는 고도비만 수술을 통해 건강한 몸과 함께 행복한 가정까지 되찾았다. 자랑스러운 엄마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인고의 시간을 함께한 하태경 교수와 조선경 환자의 이야기. 행복한 삶을 되찾아준 하태경 교수님께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약물 치료를 받으면서 1년 사이에 30kg가 쪘었어요. 고도비만과 함께 천식과 고지혈증, 관절통이 생겼고 당뇨 수치 또한 높아 위험한 상태였죠. 조금만 움직여도 힘들어하는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주사치료를 생각하고 병원을 찾았는데 하태경 교수님은 수술 치료를 권하셨어요. 수술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지만, 지금 제 상황에는 수술적 치료가 더욱 효과적일 거란 교수님의 자세한 설명에 믿고 따르기로 했죠. 처음 내원했을 때에는 100kg에 육박하는 체중이었지만, 수술한 지 1년이 경과한 지금 50kg가량을 감량했고, 아직도 감량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수술 후 교수님이 시키는 대로 관리한 결과예요. 아이와 놀아주기, 함께 장보기 등 예전에는 힘들어서 하지 못했던 일들을 마음껏 하며 행복한 엄마의 삶을 누리고 있답니다. 한양대학교병원에서 하태경 교수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지금 같은 행복을 만날 수 없었을 거예요. 제게 맞는 치료법을 권해주시고 수술 후에도 끝까지 추적 관찰을 통해 관리해 주신 하태경 교수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조선경 드림 엄마는 강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조선경 님께 조선경 환자분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치료의 경과가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이 건강해야 자식을 잘 키울 수 있다는 적극적인 치료동기가 보였기 때문이죠. 예상대로 목표했던 것 이상의 감량을 할 수 있었고, 가지고 계셨던 다른 질환들도 모두 좋아졌습니다. 특히 제가 말한 식이습관과 운동에 대한 지침을 철저히 따라주어서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외래 추적도 빠지지 않고 와주셨고요. 정신건강의학과 약의 영향으로 치료가 잘 되더라도 추후 우울증이 다시 올까봐 걱정했지만, 환자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지금은 정신과적 질환도 많이 좋아진 것 같습니다. 얼마 전, 딸아이에게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게 도와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실 때에는 제 마음이 뭉클하더라고요. 고도비만 수술 환자 중에서는 수술 직후 체중 감량 후에 진료를 오시지 않다가 수년이 경과한 후 다시 고도비만이 되어 내원하시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수술만 했다고 해서 고도비만이 완전히 치료되는 것은 아닙니다. 감량 후 주치의와 정기적인 면담을 통해 관리하는 과정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조선경 님, 앞으로도 꾸준히 주기적인 상담과 관리를 통해 건강한 삶을 이어나가시기를 바랍니다. 하태경 드림
2022-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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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 2:00 환자의 발이 되어주는 사람
한양대학교병원 간호국 이영수 기능원 한양대학교병원에는 오랜 투병 생활과 노환으로 거동이 힘든 환자들이 많습니다. 거동이 어려운 환자가 진료와 수술 등 다양한 이유로 병실을 나가야 할 때에 이영수 기능원은 환자의 다리가 되어줍니다. 오늘 그가 안내하는 길 끝에는 어떤 소식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밝은 그의 미소처럼 희망찬 소식만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2022-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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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주년 특별기획] 가지 않은 길, 새로운 길을 개척하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는 사람의 발걸음은 고단하다. 숱한 장애물을 헤치고 ‘류마티스’라는 새로운 분야를 우리나라에 들여온 김성윤 前 교수를 만났다. 한양대학교병원 개원 50주년 특별기획 한양대학교병원을 빛낸 사람들 ④ 김성윤 한양대학교류마티스병원 초대 병원장 1975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1980 한양대학교병원 내과 전문의 1983 미국 Chicago, Rush Medical School Post-graduate Trainee in Immunology 1983 ~ 1985 미국 New York, Mount Sinai 의대 Hospital for Joint Disease – Orthopaedic Institute Rheumatology fellow 1985 ~ 1986 미국 Univ. of Tennessee Research 1980 ~ 2001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내과 교수 1993 ~ 1996 한양대학교병원 중앙연구실장 1993 ~ 2001 한양대학교 류마티즘연구소장 1997 ~ 2001 한양대학교류마티스병원 초대 병원장 2001 ~ 현재 김성윤내과 ‘류마티스클리닉’ 원장 시를 사랑하던 문학도, 의사가 되다 학창시절부터 의사를 목표로 하는 보통의 의사와는 달리, 고등학교 시절까지만 해도 그는 시와 소설을 사랑하던 문학도였다. 문학에 빠져 공부와 등을 진 그는 결국 대학 진학에 실패하게 된다. 남북한의 대치로 혼란했던 그의 재수 시절, 상황이 어느 쪽으로 기울어도 의사는 살아남을 수 있다는 아버지의 권유에 당시 신설 의대였던 한양대학교 의과대학에 진학하게 된다. 의사가 운명이었던지 학부와 수련과정을 잘 마칠 수 있었고 ‘진료과 선택’이라는 과제를 목전에 맞이하게 된다. 내과를 선택했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찾는 그의 선천적인 기질은 그를 한자리에 가만히 두지 않았다. 류마티스’라는 新학문 배움을 찾아 떠나다 남들이 하지 않는 분야를 새롭게 개척하고 싶었다. 한양대학교병원 내과 의사로 근무하면서 그는 고민했다. ‘류마티스’라는 개념조차 없었던 시절, 내과학 서적에 작게 주석으로 달려 있는 류마티스관절염에 대한 설명 두어줄을 발견하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결정했다. 학장을 찾아가 연수를 보내 달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1983년, 미국행 비행기에 탄 청년의사의 가슴은 새로운 학문에 대한 기대로 잔뜩 부풀어 있었다. “그때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갔어요. 가서 배우는 모든 게 새로웠죠. 어머니 뱃속에서 나온 아기가 세상을 알아가는 기분이었다고 할까요. 어느 하나 기억에 남지 않 는 일이 없어요. 공부를 하다 보니 2년 가지고는 어림도 없겠더라고요. 학교에서는 계속해서 돌아오라는 연락이 왔고 심지어는 저를 잡아가려고 미국으로 사람이 오기까지 했었어요(웃음). 하지만 배워야 할 것을 충분히 배우지 못 하고 돌아간다면 분명 후회할 거라는 생각에 무조건 버텼죠. 그렇게 4년의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어요." 국내 최초의 류마티스내과 전국의 환자를 불러 모으다 한양대학교병원에 돌아온 그는 류마티스내과의 분과에 힘을 기울였다. 류마티스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절, 의료진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류마티스에 특화된 진료의 필요성을 알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의료진들조차 환자가 드문 질환에 굳이 과를 따로 만들 필요가 있느냐고 했을 정도였다고. 하지만 그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계속해서 사람들을 설득했다. 류마티스질환에 대해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던 그는 TV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로 마음먹는다. 방송 이후 사람들의 반응은 엄청났다. 단순 소염제 처방으로 변변치 못한 치료를 받고 있던 전국의 류마티스 환자들이 그에게 모여들었다. 1993년 당시 그를 기다리는 대기환자는 모두 6천 7백여 명, 최소 몇 개월은 기다려야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때만 해도 관절이 아파서 오는 환자들은 무조건 뼈와 관절의 문제라고 판단해서 정형외과로 보냈어요. 류마티스 질환은 관절에서 증상이 나타나기는 하지만, 인체의 다양한 장기에 영향을 끼치는 질환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었던 거예요. 방송으로 인해 많은 분이 자신이 앓고 있는 질환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되었을 거라 생각해요. 다행히도 환자가 많이 왔고 저희 진료과도 활황을 이루었습니다.” 한양대학교병원의 자랑, 류마티스병원을 세우다 그는 류마티스내과의 성공을 바탕으로 더 큰 꿈을 그린다. 류마티스 환자를 한 곳에서 체계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류 마티스병원을 세우는 것이었다. 병원 설립을 위한 그의 노력은 1998년 결실을 맺는다. 국내에서는 최초로 류마티스 병원이 설립된 것. 남들이 하지 않는 분야를 개척해 일등을 거머쥐겠다는 그의 초심이 실현된 순간이었다. “류마티스병원의 개원은 지난 의사 생활의 모든 노력이 보상 받는 것처럼 뿌듯했습니다.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고 요. 똑똑한 후배들과 함께 즐겁게 일할 수 있었습니다. 그 때 제가 이사장님께 류마티스병원을 강남으로 옮기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위치적인 조건도 병원의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거든요. 구체적인 계획을 말씀드렸더니 이사장님께서는 아주 좋아하셨습니다. 병원을 옮길 땅까지 직접 보러 다녔으나, 주변의 거센 반대로 결국 무산된 것이 아직까지도 아쉽습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초심으로 돌아가다 초대 병원장으로 류마티스병원의 체계를 만들었던 그의 앞날은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마음만 먹으면 종신 병원장까지도 가능한 상황에서 그는 홀연 대학을 나와버린다. 많은 사람들이 그 이유를 궁금해 했지만 그간 시원하게 대답할 수 없었던 것은 병원에 대한 서운함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인생의 최정점에서 갑자기 모든 걸 포기한 것 같이 보일 수도 있었을 거예요. 병원 안에서 다른 진료과와 힘겨루기 하는 일상을 그만하고 싶었어요. 의사로서 제가 해야 할 일은 환자를 치료하는 일인데 정작 출근하면 다른 것들이 더 신경이 쓰이는 거예요. 진료와 연구에만 몰두하고 싶었 죠. 그 길로 김성윤내과의원을 개원했고, 오늘까지 환자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미우나 고우나’ 한양인 다시, 돌아오다 '다시는 한양대학교병원에 발을 들이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그였지만, 서운함은 사라진 지 오래다. 세계적인 수준으 로 류마티스병원을 성장시켜나가는 후배들의 모습을 보면, 고마운 마음뿐이라고. 2019년에는 모교의 발전을 위해 발전기금 3억원을 쾌척, ‘김성윤 LAB’이 탄생했다. ‘미우나 고우나’ 모교의 발전을 생각하는 그는 어쩔 수 없는 한양인이다. “몇 년 전, 의과대학 50주년에 나를 명예의 전당에 올리겠다고 연락이 왔어요. ‘아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구나’ 싶더라고요. 비록 당시에는 좋지 않은 감정으로 병원을 나왔지만, 후배들은 나를 따뜻하게 기억해 주고 있었다는 사실에 감동했습니다. 지금 류마티스병원에 있는 후배들이 정말 잘해주고 있어요. 모두 국제적인 연구자로 성장했죠. 다만 시설 측면의 지원이 모자란 것 같아 마음이 쓰입니다. 앞으로 병원 차원의 전폭적인 지지와 함께 더욱 발전하는 류마티스병원이 되기를 바랍니다.” [한양대학교류마티스병원 바로가기]
2022-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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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주년 특별기획] 건강한 여성의 삶을 만들다
외과라는 이름 아래, 대부분의 수술이 이루어졌던 시절. 유방을 비롯한 호르몬 분비기관에 특화된 유방내분비외과의 필요성을 외쳤던 이가 있다. 정파종 前 교수는 흔들리지 않는 확신으로 한양대학교병원에 유방내분비외과를 설립한 인물이다. 대한민국 유방내분비외과 명의, 정파종 前 교수의 업적을 되돌아본다. 한양대학교병원 개원 50주년 특별기획 한양대학교병원을 빛낸 사람들 ③ 정파종 前 교수 1985 ~ 2003 1987 ~ 1989 1994 ~ 1997 1997 ~ 2002 현재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외과학 교수 Univ. of Texas Medical School at Houston Research Scholar UT MD Anderson Cancer Center Post-doctoral Fellow (Breast Endocrine Surgery) 한양대학교병원 교육연구부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응급의학과 주임교수 및 과장 정파종외과의원 원장 강남구의사회 고문 대한내분비외과학회 자문위원 대한외과초음파학회 자문위원 유방외과연구회 자문위원 굳건한 믿음으로 일구어낸 유방내분비외과 설립과 개척 유방내분비외과는 호르몬 분비와 관련된 장기를 외과적 수술을 통해 치료하는 진료과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유방암과 갑상선질환 등의 진료가 해당 과에서 이루 어진다. 최근 서구화된 식생활로 인해 환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정파종 前 교수는 국내 유방내분비외과를 개척하고 발전시켜 오늘날의 체계를 만든 장본인이다. 한양대학교 의예과 2기로 입학하여 수련 과정까지 마친 그는 1985년 한양대학교병원 조교수로 본격적인 의사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외과를 선택한 그는 호르몬 분비기관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외과의사로 일하던 중 대학에서 지원하는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 1987년 미국으로 떠나게 된다. 그는 Texas대학교 의대 방문교수와 미국 M.D. Anderson Cancer Center 박사 후 펠로우로 2년간 활동하며 유방내분비외과에 대한 최신 지견을 익혔다. 1989년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그는 유방내분비외과 진료를 전문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지금은 넘쳐나는 수요에 여러 병원마다 별도의 진료 센터가 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한두 곳의 대학병원에서 이제 막 생기기 시작한 작은 진료과였다. “외과에 있는 저의 스승이자 선배 교수님들이 저에게 환자를 맡겨주신 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막 생겨나기 시작하는 분야였기 때문에 의사도 많지 않았어요." 질병을 넘어 삶을 돌보다 한 번 더 생각하는 환자의 마음 한양대학교병원의 유방내분비외과의 전문의로 일하면서 수많은 이들의 생명을 구했지만 그의 보람은 단순한 생존을 넘어 치료 이후 환자가 더 좋은 삶을 이어가게 하는 데에 있었다. 유방암 치료 후 수술이 아무리 잘 되었다고 해도 사라진 가슴은 영원히 환자의 가슴에 상처로 남아있었다. 환자들이 ‘살아남은 사람’에서 만족하기 보다 ‘행복한 여자’의 꿈을 이루게 해주고 싶었다고. 이에 성형외과의 안희창 교수와 협진, 한국인에게 맞는 유방 재건술을 개발·도입한다. 만족스러워하는 환자들의 반응을 보고는 유방암수술과 재건술을 한 번에 하는 ‘즉시재건술’을 적용, 많은 환자들의 입가에 미소를 선사했다. 또한 유방암 환자 신체를 최소한으로 침습해 악성종양을 제거할 수 있는 유방보존술 및 감시 림프절 절제술, 그리고 투석 환자에게 잘 발생하는 부갑상선 증식증에 의한 기능항진증 수술 또한 국내 도입 초창기에 그가 한양대학교병원 의료진들과 한 팀으로 전국에 보편화한 술기 중 하나다. 그는 실험적인 술기를 도입하고 좋은 결과를 얻어낼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환자에 대한 관심과 사랑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내 앞에 있는 환자를 귀하게 생각하고, 치료해내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 명망 높은 실력의 전부라고 말하는 그였다. 응급의학과의 기반을 다지다 선견지명으로 뿌린 발전의 씨앗 정파종 前 교수는 한양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의 초대 주임 교수이기도 하다. 1997년도 한양대학교병원에도 응급의학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의과대학에 응급의학교실이 신설되었다. 외과 교수였던 그가 직접 의료진을 뽑고 교육시키며 기반을 다졌다. 한양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는 신속하고 정확한 응급의료 서비스로 지역민과 인근 협력병원의 인정을 받고 있다. 2015년에는 그 역량을 인정받아 보건복지부로부터 서울 동남권 유일의 권역응급 의료센터로 지정, 현재까지 지역민들의 든든한 의료 안전망이 되어주고 있다. 아직까지도 응급의학과에 신임 교수나 수련생이 오면 정파종 前 교수와 인사를 나눌 정도로 끈끈한 유대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어렵사리 만들어놓은 응급의학과가 눈부시게 발전해 한양대학교병원의 자랑이 된 것을 보면 후배들에 대한 감사와 보람이 밀려온단다. ‘환자중심’ 병원을 향한 일편단심 의사의 지조 2003년 그는 20년간의 교수 생활을 떠나 지금의 정파종 외과의원을 개원했다. 환자 중심의 유방내분비외과 시스템을 만들고 싶었던 그의 평생 소망을 이룰 수 있게 된 것이다. 유방내분비외과를 찾는 환자 중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유방암 환자의 경우 진료를 보고, 검사 및 촬영을 할 때마다 옷을 벗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환자가 몰리는 대학병원에서는 각 과정을 거칠 때마다 병원에 내방해야 하며 대기시간도 길다. 지금 정파종외과는 진료실과 검사실, 촬영실, 조직검사실이 모두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붙어 있다. 수술실은 한발 짝 건너편이다. 이처럼 편리한 시스템과 정교한 그의 술기가 만나 정파종외과의원의 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그 흔한 홈페이지 하나 없지만, 그의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의 예약이 평균 6개월은 꽉 차있을 정도로 많은 환자들이 그를 찾고 있다. 50년의 시간을 이끌어온 사람을 향한 순애보 정파종 前 교수는 한양대학교병원 개원 50주년을 그간 병원을 이끌어온 선후배 교수님들의 노고에 감사와 격려를 보내는 기회로 삼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그는 2026년 완공 예정인 신축 건물에 대한 기대와 이를 발판 삼아 한층 도약할 한양대학교병원의 미래에 대한 응원의 메시지로 인터뷰를 마쳤다. “건물, 장비, 평판 등 좋은 병원을 이루는 요소는 많습니다. 하지만 다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한 것이 바로 사람입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한양대학교병원은 ‘사람’이 중심 되어 발전해나갈 것입니다. 전국의 2만여명의 동문 의료인들도 합심하여 병원의 명성을 드높일 때입니다. 모두들 자신의 자리에서 의료인으로서의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한다면 앞으로 병원의 미래 또한 밝을 것입니다.”
2022-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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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순간의 만남을 위해
아이를 낳는 일은 누구나 당연하게 거쳐 가는 인생의 관문처럼 보이지만 모두가 쉽게 지나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조건으로 어려운 상황에 있는 고위험 산모를 따뜻한 마음으로 돌보는 호정규 교수를 만났다. 사진. 한양대학교병원 산부인과 호정규 교수 생의 첫 순간을 만들다 임신 준비 중에는 아이가 생기지 않을까, 기쁜 임신 소식을 접한 뒤에는 배 속의 아이가 잘 자라고 있는지, 산달이 임박해서는 출산의 고통이 두렵다. 눈앞에 온 아이의 다섯 손가락을 세어보고 나서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엄마의 마음엔 걱정이 많다. 몇몇 임산부들은 임신과 출산의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만나기도 한다. 산모의 나이가 19세 이하이거나 35세 이상인 경우, 유전적 질환이나 과거 병력이 있는 경우 등은 특별한 관리 및 치료를 요하는 고위험 임신으로 분류된다. 이 경우 아주 작은 문제라도 태아에게는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기에 산모는 하루가 멀다하고 병원을 드나들어야 한다. 호정규 교수는 엄마와 아기가 건강하게 만나는 날까지 산모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산부인과 의사다. “산부인과는 크게 산과와 부인과로 나뉘어요. 제가 전공한 산과는 임신과 출산의 정상적인 과정 혹은 병적인 부분을 다루는 분야죠. 임신 및 출산에 큰 어려움이 없으셨거나 접해보지 않으신 분들은 산과적 질환이 얼마나 다양한지 잘 모릅니다. 정자와 난자의 수정으로부터 태아가 생기고 자라나며 출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죠. 태아 자체가 문제가 있거나, 임신 유지가 잘 되지 않거나, 조기진통이 있거나, 임신 중 혹은 분만 시 대량 출혈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산모가 내외과적인 질환을 가지고 있다면 임신 유지 및 출산 시 큰 위험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와 같은 고위험 임신 산모의 산전 진찰 및 분만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학창시절부터 줄곧 의사를 꿈꾸어 온 그. 의사가 아닌 다른 직업은 생각해 본 적조차 없단다. 하고많은 진료과 중에 산과를 선택한 것은 한양대학교병원에서 수련하며 얻은 깨달음 때문이었다. “인턴 시절 산부인과 주임 교수님과 면담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짧은 시간이 저로 하여금 산부인과를 선택하게 했습니다. 당시 교수님은 그간 봐온 탄생의 순간 중에서 감격스럽지 않았던 적은 단연코 없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생의 첫 순간을 만들어내는 산부인과의 역할이 다른 어떤 진료과 못지않게 가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막상 현장에서 일해보니 힘들기는 하지만, 엄마와 아기가 만나는 감격스러운 순간을 볼 때면 산부인과를 선택하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의사로서 큰 보람을 느끼게 해주는 진료과예요.“ 더 건강한 출산을 위해 한양대학교병원 산과는 고위험 임신 산모들의 산전 진찰 및 분만에 특화되어 있는 곳이다. 오랜 시간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노련한 의술을 자랑하는 산과 의료진은 물론, 신생아실을 담당하는 소아청소년과, 안과, 흉부외과 및 외과와의 밀접한 협력체계를 통해 신생아 및 미숙아의 건강을 지키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국내 최고 수준의 류마티스병원이 바로 옆에 있기 때문에 자가면역질환을 가진 산모들도 많이 내원하고 있다. “오랜 시간 수많은 산모를 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선 언제나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그럴 때마다 다른 진료과의 교수님들과 협진하며 예상치 못한 상황에도 흔들림 없이 대응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진료과의 수준 높은 교수님들이 항상 저와 함께하기 때문에 언제나 든든하답니다.” 새로운 케이스에 대해 궁금해하고 끈질기게 답을 찾는 모습은 그의 선천적인 기질이다. 숱한 동업 제안을 거절하고 한양대학교병원에 남은 것도 연구에 집중하고 싶어서였다고. 요즘 그는 ‘태아의 안녕 상태 진단’이라는 산과의 오랜 숙제를 풀기 위해 진료 외 시간을 모두 쏟아붓고 있다. “산과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문제가 있는 임신에서 언제 어떻게 건강한 아이를 출산시키느냐’입니다. 태아는 최대한 자궁 내에서 오래 있다가 출산하는 것이 유리한데, 태아나 산모의 상태가 좋지 않을 경우 부득이하게 일찍 출산해야 하죠. 의료진이 할 일은 최선의 타이밍과 분만 방법을 결정해 주는 것입니다. 이에 저를 포함한 산과 의사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점이 자궁 안에 자라고 있는 태아의 상태입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태아가 태내에서 안녕한지 구별해 내는 진단기기가 상대적으로 매우 원시적이고 낙후되어 있습니다. 이에 좀 더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태아 안녕 상태를 진단할 수 있는 기기 개발에 연구역량을 다하고 있습니다.” 환자와 같은 곳을 바라보다 그는 한양대학교병원에서 환자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소문난 의사다. 이따금 퇴원 후에도 감사 인사를 전하러 오는 환자가 있을 정도. 환자 앞에서 그는 의사를 넘어 아낌없는 응원으로 정신적 지지가 되어주는 든든한 버팀목이다. “저에게 오는 환자들은 이미 동네 의원이나 병원에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사람들이에요. 내원할 때부터 이미 정신적으로 지쳐있는 경우가 많죠. 특히 다른 진료과와는 달리 대부분의 문제가 환자 본인을 넘어 태아의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더욱 그래요. 환자를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신경을 많이 쓰는 편입니다. ‘환자가 제 아내라면, 제 여동생이라면, 제 딸이라면 어떻게 할까’ 하는 생각을 기준으로 진료를 보고 있습니다. 이따금 따로 감사의 뜻을 전하거나 인사를 오실 때에는 저의 이런 노력을 환자분들이 알아주시는 것 같아 마음이 좋습니다.” 일년에 가까운 임신기간 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은 고위험 임신 산모들이 무사히 출산을 마치고 아이와 함께 퇴원하 는 모습을 볼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는 그. 얼마 전 그의 가족 또한 출산의 과정을 거치며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최근 우리 가족도 새로운 구성원을 맞이했습니다. 의사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출산과 남편의 입장에서 경험하는 출산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었습니다. 덕분에 환자의 마음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되었죠. 환자와 마주 보기보다는 나란히 서서 같은 고민을 바라보며 이를 해결해 주는 조력자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산부인과 호정규 교수 바로가기
2022-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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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주년 특별기획] 생명과 기쁨을 나누는 소아 환자들의 슈바이처
어른이고 아이고 병원에 오는 모든 환자를 똑같은 방법으로 검사하고 치료하던 1970년대. 정풍만 교수는 소아에게 맞는 진료법을 도입해 우리나라에 소아외과를 처음 만든 인물이다. 천민난만한 아이들의 눈앞에서 어떻게든 치료해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대한민국 소아외과의 역사를 일궈온 정풍만 명예교수를 만났다. 한양대학교병원 개원 50주년 특별기획 한양대학교병원을 빛낸 사람들 ② 정풍만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명예교수 1974 ~ 2009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1977 ~ 1979 영국 셰필드대 아동병원 소아외과 연수 1980 ~ 2009 한양대학교의료원 소아외과 과장 1983 ~ 1988 한양대학교의료원 기획실장 1988 ~ 1997 한양대학교의료원 부원장 1997 ~ 2001 한양대학교의료원 외과 주임교수 1998 ~ 2002 대한외과학회 보험, 고시이사 2002 ~ 2004 대한외과학회 이사장 1984 대한소아외과 창립 1993 ~ 1995 대한소아외과 학회장 1995 ~ 2000 대한 소아외과 학회지 「소아외과」 창간 편집위원장 2001 ~ 2003 한양대학교 교수협의회 부회장 2003 ~ 2006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장 2004 ~ 2006 대한의과대학학장협의회 회장 2007 대한민국 의학 한림원 정회원 2010 후즈후 세계인명사전 등재 2016 대한외과학회 자문위원 수재 중의 수재, 배움의 길을 달리다 대한민국 소아외과 창시자로 알려진 정풍만 명예교수는 1967년 서울대 의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의사 국가고시에서도 전국 최고 성적으로 합격한 수재다. 충북의료원에서 군 대체복무를 하던 그는 한양대학교 설립자 김연준 이사장의 부름을 받고 한양대학교병원에 근무하게 된다. 그는 쉴 새 없이 몰려드는 교통사고 환자를 보며 외과 전문의로서의 기본기를 다졌다. 2년여 간 외과 생활을 하며 더이상 새롭게 배울 것이 없다 여겨질 즈음, 정 교수의 귀에 영국문화원의 장학생 모집 소식이 들려왔다. 당시 영국은 세계최초의 소아병원을 기반으로 소아외과 분야의 활발한 성장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단 한 명 모집했던 장학생 자리에 선발된 그는 새로운 분야에 대한 기대를 안고 비행기에 올라탔다. 소아외과, 어른이 아닌 어린이의 기준을 만들다 영국 셰필드대 아동병원, Alder Hey 아동병원 및 Great Ormond Street 아동병원에서 연수를 마친 정 교수는 1979년 한양대학교병원으로 돌아온다. 선진 의료기술을 배워온 그는 곧바로 소아외과 환자를 독립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모든 병원의 시스템과 시설이 어른 기준으로 되어 있던 1970년대, 어른 못지않게 쏟아지는 소아 환자에 맞는 의료 체계가 절실했다. “하물며 피검사 장비조차 아이에게 맞는 것이 없었어요. 체중 1.5kg 아이 몸 안에 피가 100cc인데 한 번 검사할 때마다 20cc씩 피를 뽑으면 되겠나요. 또 아이들은 어른에 비해 신체 변화가 아주 급격하기 때문에 의료진 또한 아이에게 맞는 사람이어야 해요. 잠깐 한 눈 팔았다가는 처치 시기를 놓치기 일쑤니까요.” 정 교수의 노력으로 개설된 소아외과는 1980년 4명의 간호사와 8인용 병실 1개로 시작하여, 1981년 5월부터는 본관 11층에 20병상 전용 병실에 9명의 간호사가 배치됐다. 이때부터 2009년 퇴임 시까지 정 교수는 소아외과의 유일한 전문의로 수없이 많은 아이들을 진료했다. 샴쌍둥이 분리 수술, 다양한 성공 사례를 남기다 오늘날 당연하게 여겨지는 산전검사가 없던 7~80년대, 출산율 또한 높아 선천적 기형으로 병원에 찾아오는 환자가 많았다. 이 시기 정 교수는 다양한 케이스를 치료, 연구하며 소아외과 분야의 역사를 발전시켜갔다. 그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바로 샴쌍둥이 분리 수술이다. 신체 일부가 붙어서 태어나는 샴쌍둥이는 신생아 5만~10만명 당 1명꼴로 탄생하고 대부분 태어나는 즉시 사망한다. 처음 정 교수를 찾은 환자는 가슴과 배가 30cm 가량 붙어 얼굴을 마주보고 있는 남자아이 둘이었다. 무사히 수술을 마친 아이들은 건장한 청년이 되어 아직까지 잘 지내고 있다고. 후배들을 위한 길을 만들다 정 교수는 병원의 체계를 만드는 데에도 힘썼다. 특히 그가 한양대학교병원의 주요 보직을 맡으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교수들이 공부할 수 있는 교수실을 만들어주는 일이었다. 입버릇처럼 공부하라는 말을 달고 다녔던 그는 후배 교수들이 해외에서 선진 의료기술을 배워오기를 바랐다. 의료 서비스의 수준은 국민 생명과 직결 되어 있는 일인만큼,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는 판단 아래 그는 교수 해외연수를 위한 기반 마련에 돌입했다. New Castle upon Tyne 의과대학과 자매결연을 맺어 교수 교환프로그램을 만들었으며, 한양대학교 의과대학을 영국의학협회(general medical council)에 등재시키기도 했다. 이후 해외연수 프로그램이 정착되면서 더 많은 교수 들이 경제적 걱정을 덜고 한결 나은 환경에서 의술을 배워올 수 있었다. “지금은 누구나 외국에 나갈 수 있지만 옛날엔 아니었어요. 아무나 나갈 수 없었죠. 그런 때에 제가 영국문화원장학생 신분으로 영국에 가면서 딱 200불을 들고 갔어요. 선진 의료기술을 배오겠다는 생각으로 버텼지만, 경제적으로 힘들었죠. 당시의 제 경험을 바탕으로 교수 해외연수 프로그램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우리 병원을 넘어서 우리나라 의료계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책임감도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한양대학교병원의 기획실장, 부원장을 맡으며 김연준 이사장과 각종 규정을 제정하며 오늘날의 체계를 완성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운영의 기반을 닦아놓은 그의 공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어 1994년에는 장폐색으로 소화흡수를 하지 못하는 단장증후군에 걸린 신생아의 장 길이를 두 배로 늘리는 수술을 국내 최초로 시도해 성공하기도 했다. 정성을 들여 치료한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살아가는 모습이 그렇게 고맙고 애틋하다고. 아직도 그의 양평 자택에는 종종 옛 환자들이 찾아온다.
2022-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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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새 삶을 얻다 - 한양대학교병원 외과 안병규 교수님, 흉부외과 장효준 교수님께 보내는 편지
사진. 한양대학교병원 흉부외과 장효준 교수(좌), 임동회 님(중), 외과 안병규 교수(우) 한양대학교병원 외과 안병규 교수님, 흉부외과 장효준 교수님께 보내는 편지 의사와 환자 사이의 신뢰는 관계가 유지되기 위한 기본조건이면서, 치료 과정 전반에 영향을 끼치는 아주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다른 목적 없이, 오직 질병의 치료를 위한 두 사람의 마음이 만날 때에 비로소 진정한 치유가 이뤄질 수 있다. 임동회 님이 적지 않은 나이에 큰 수술을 두 번이나 견딜 수 있었던 것은, 건강한 삶과 의료진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 덕분이었을 것이다. 생명의 은인이신 두 분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대장암 검사 도중 폐의 병변까지 발견해 한 번에 치료할 수 있었습니다. 화장실 가는 게 불편하고 피가 나오기도 해서 몸에 문제가 있음을 느끼고 동네 병원을 찾았어요. 의사가 큰 병원에 가보라고 하더군요. 겁이 났죠. 사위의 권유로 한양대학교 병원에 오게 됐어요. 속초에서 먼 길을 오다보니 조금 지치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사위 말 듣기 잘한 거 같아요. 대장암 검사 도중 안병규 교수님이 폐의 병변까지 발견해 한 번에 치료할 수 있었거든요. 장효준 교수님 역시 언제나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셔서 큰 수술을 안심하고 받았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두 분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임동회 드림 암을 이겨낸 삶에 대한 의지를 보았습니다. 대장암이 전이되기 쉬운 장기가 간과 폐입니다. 임동회 님은 대장암이 어느 정도 진행된 상태에서 내원했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같이 보게 된 거죠. 아니나 다를까 폐에도 이상 병변이 발견되었고, 흉부외과 장효준 교수님께 협진 요청을 드렸습니다. 두 가지 수술을 진행해야 하는 상황에서 젊은 사람이었다면 동시에 할 수도 있겠지만, 연세가 있으신 만큼, 합병증 위험이 너무 높아서 차례로 수술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수술 후 회복을 위한 다양한 요청을 잘 따라와 주셔서 좋은 결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안병규 드림 의료진에 대한 전적인 믿음에 보답하겠습니다. 안병규 교수님을 통해 임동회 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폐 검사 결과 두 군데에서 암이 발견되었고 대장에서 전이된 것이 아닌, 폐 자체적으로 생겨난 암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상엽과 하엽 모두 절제하려 했다면 어려운 점이 많았겠지만, 기관지 내시경으로 최소절제술을 진행하여 환자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종종 직접 쓰신 손 편지에는 의료진에 대한 전적인 신뢰가 담겨 있었습니다. 진심 어린 편지를 읽을 때마다 ‘정말 잘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언제까지나 건강하십시오. 장효준 드림
2022-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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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 4:00 마음의 통증까지 돌보는 사람
PM 4:00 | 마음의 통증까지 돌보는 사람 한양대학교병원 황운택 물리치료사 수술 후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에 환자들은 답답하기만 합니다. 때론 아프고 힘든 물리치료를 포기하고 싶지만, "조금만 더"라고 말하는 황운택 물리치료사의 응원에 다시 한 번 힘을 냅니다. 환부를 치료하는 그의 따뜻한 손은 환자의 마음까지 매만집니다.
2022-05-17